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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입 다문 열린우리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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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강민석 정치부 기자

주한미군 일부가 이라크로 차출된다는 소식이 본지 보도로 처음 알려진 지난 17일. 열린우리당의 논평을 기다리다 지친 기자는 오후 2시쯤 상근 부대변인 A씨에게 당의 입장을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민감한 문제라 섣불리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했다. '여당이 이처럼 중요한 문제에 대해 논평 한줄 내지 않는 게 옳은가'라고 따졌더니 A씨는 "(이날) 당의장도 물러났고…"라며 얼버무렸다. 그러면서 "사정을 잘 알면서 그러느냐"고 했다.

결국 당의 공식논평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주요 인사들도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이날 오전 열린 여당의 최고지도부 회의인 상임중앙위원회엔 보도진이 몰렸으나 상임중앙위원들이 주고받은 말은 김혁규 전 경남지사의 총리 지명이 당연하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그 자리에서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을 거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나라당이 급히 '안보정책 및 이라크 파병대책특위'를 열어 안보 공백 우려 등에 대한 정부의 신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사정은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18일 열린우리당 공보실에선 딱 한건의 논평이 나왔다. 5.18기념식과 관련한 것이었다. 이날도 열린우리당은 주한미군 차출문제에 대해선 함구했다.

주한미군 4000여명이 빠졌을 때 한반도에 어떤 일이 생길지 국민이 궁금해 하고 불안해 해도 여당은 그 흔한 당정회의 한번 갖지 않았다.

국방부 장관 출신으로 당의 군사통인 조성태 당선자에게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미국이 전쟁 억지력을 위해 가시적 조치를 취하고 있는 만큼 안보에 불안은 없다"고 했다.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인데 왜 그렇게 보도를 하느냐"고도 했다.

언론이 지나치게 호들갑을 떤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당이 수수방관하는 태도가 옳은 것일까. 주한미군 이동문제는 국가안보와 국민경제에 직결되는 사안이다. 지난 이틀 동안 여당은 마치 국정에 대한 책임감도 차출당한 듯했다.

강민석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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