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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형 가치주 펀드도 키코에 코 꿰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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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키코(KIKO·통화옵션상품)의 후유증이 여전히 주식시장을 옥죄고 있다.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로 진정되는 듯 보였던 환율시장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14일 원-달러 환율은 1399.2원으로 마감했다. 10월 말 기록한 1500선을 향해 질주하는 모양새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키코를 포함한 환 관련 파생상품 손실을 공시하는 기업도 급증했다. 이달 들어서만 50개 가까운 기업이 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이들 중에는 안정적인 실적을 내왔던 중소기업도 다수 포함돼 있다. 중소형 펀드의 편입 대상이 되던 기업이다. 이에 따라 이들을 편입한 펀드의 수익률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키코, 끝나지 않은 위험=기업들은 3분기 실적 발표에 맞춰 키코로 대규모 손실을 봤다는 공시를 쏟아냈다. 회생절차 개시(법정관리)를 신청했다가 채권단의 구제로 이를 철회한 태산엘시디가 대표적이다. 3분기 손실액이 6000억원을 웃돈다고 밝혔다. 자기자본의 8800%를 넘는 수치다. 회생절차에 들어간 아이디에이치는 153억원(자기자본의 42.67%)을 까먹었다. 정보기술(IT) 마케팅 전문기업인 에스에이엠티는 키코 등으로 자기자본의 99.6%에 달하는 819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키코 관련주는 10월 말 환율이 안정되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10월 마지막 주부터 2주간 태산엘시디는 161%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제이브이엠(62%)·현진소재(64%)·우주일렉트로닉스(54%) 등 대부분의 키코 관련주가 50% 안팎 올랐다. 일부에선 “단기 급락한 지금이 오히려 투자 기회”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후 환율시장 불안이 이어지면서 이들 종목은 지난 한 주간 10% 안팎 떨어졌다. 지난주 코스피(-4.1%)나 코스닥 지수(-2.5%)보다 낙폭이 컸다.


◆펀드 수익률도 부진=키코 관련주를 편입한 펀드의 성적도 좋지 못했다. 16일 현대증권이 키코 관련 종목을 1개 이상 편입(9월 말 현재)한 90개 펀드를 분석한 결과 이들 펀드의 최근 1개월(6일 기준) 수익률은 평균 -16.2%로 나타났다. 반면 키코 관련주가 없는 펀드는 같은 기간 -14.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주가 하락을 우려, 키코 관련주를 편입한 펀드 대부분이 이들 종목의 비중을 줄여나갔다. 키코 관련주를 펀드 내 3% 이상 편입한 편드는 9월 말 현재 조사 대상 펀드의 26.7%로, 8월 말(38.9%)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 키코 관련주의 비중을 줄인 펀드의 성과도 상대적으로 양호했다.

현대증권 오온수 연구원은 그러나 “성과 부진의 원인을 키코에서만 찾는 것은 무리”라며 “최근 신용경색과 경기침체의 여파로 대형주 위주의 장세가 전개됐던 여파가 크다”고 설명했다. 키코 관련주를 편입한 펀드 대부분이 중소형 가치주 펀드라 최근 시장에서 부진했다는 의미다. 오 연구원은 다만 “단기적으로 보면 지금처럼 시장이 불안한 시기에는 키코 관련 이슈에서 벗어난 펀드를 고르는 게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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