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발로 솟아오른 강철 나비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SUNDAY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외모와 눈부신 인생이지만, 아름다움보다는 추함으로, 화려한 생활보다는 극도의 고행과 무미건조한 일상으로 유명한 이가 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발레리나 강수진(42). 툭툭 불거진 관절, 꺼멓게 죽은 발톱, 혹처럼 달린 굳은살의 저 위대한 ‘발 사진’은 한동안 세간의 화제를 불렀다.

강수진은 무대에서 신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상급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세계적 프리마 발레리나지만, 그보다는 깊은 인간적 감동으로 대중에게 다가온 예술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몸이 아프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개운하면 이상하다, 내가 요즘 연습을 게을리했나, 반성한다”는 그. ‘매일 오전 5시30분 기상, 2시간 스트레칭, 3분 거리의 극장으로 출근해 저녁 늦게까지 연습’이라는 지독하게 변함없는 생활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자유롭고 격정적인 사랑과 생활은 무대 위에서 경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바깥 세상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며 눈부시게 날아오르는 그를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강철 나비’라고 부른다.

강수진은 어린 나이 때 무용을 시작해 15세에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18세에 동양인 최초로 스위스 로잔 발레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다. 이듬해에는 5대 발레단으로 꼽히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동양인 최초·최연소로 입단해 올해로 22년째 활동하고 있다.

1999년 동양인 최초로 무용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를 수상하며 발레의 역사를 새롭게 쓴 강수진은 한국 출신의 세계적 무용수를 넘어 독일 발레의 자랑이다. 그가 살고 있는 슈투트가르트에 가보면 문화 홍보나 환경 캠페인 광고판으로 그의 모습이 여기저기 걸려 있고 꽃집에서는 ‘수진 강’이라 이름이 붙여진 난(蘭)을 판다. 2007년에는 ‘카머텐처린(·궁중 무용가)’ 칭호를 역시 동양인 최초로 받았는데, 여기엔 독일 내에서 위법 행위를 해도 수감되지 않는 면책 특권이 부여된다.

지난 12일 MBC TV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터키 출신 발레단 동료이다 남편이 된 튄치 셔크만(47)과의 단란한 결혼 생활 등 고국의 팬들에게 친근한 모습을 선보이기도 한 강수진은 17, 18일 내한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이날 공연할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해 7년의 무명 생활을 견디던 그는 93년 이 작품으로 처음 주역(프리마 발레리나)을 맡아 큰 성공을 거두고 30년 전 초연 당시의 의상과 반지를 물려받음으로써 ‘공식 줄리엣’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이번 무대에서 바로 그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강수진은 “제 나이나 스케쥴 상 한국에서 하는 마지막 줄리엣 전막 공연이라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수영 객원기자 uchatn@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