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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마지막 황제의 영원한 신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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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자금성의 황혼
레지널드 존스턴 지음, 김성배 옮김
돌베개, 740쪽, 2만5000원

푸른 눈의 신하는 ‘마지막 황제’를 죽는 날까지 섬겼다.

서양인으로서 자금성 최초로 황제의 스승이 된 레지널드 존스턴(1874~1938). 옥스퍼드 출신의 이 대영제국 관리는 청나라 최후의 황제 푸이(溥儀·1906~1967)의 사부였다. 그는 영국으로 돌아간 뒤 중국식 정원을 갖춘 집에서 매일같이 만주국의 국기를 게양하며 말년을 맞았다고 한다. 마지막 황제는 그의 훌륭한 제자였고, 그는 죽는 날까지 황제의 영원한 신하였다.

1934년 출간된 이 책은 저자가 목격한 ‘제국의 황혼’에 대한 기록이다. 청나라의 마지막 개혁이 된 변법자강운동(1898년)의 실패에서부터 세 살짜리 황제 푸이의 등극(1908년)과 신해혁명(1911년)에 따른 퇴위, 결국 푸이가 자금성에서 쫓겨난 1924년까지 격동의 중국사를 그렸다.

이 푸른 눈의 목격자는 군주제의 철저한 옹호자로서 충성스럽게 자신의 제자이자 군주를 변호했다. 서양인이라는 타자의 시선은 당시 중화민국이 막 걸쳤던 ‘공화국’이란 서양 옷의 외피를 뚫고 중국인보다 더 ‘동양적인 가치’에 매료됐다. 20여 년 전에 나온 베르톨루치의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피터 오툴이 연기한 푸이의 서양인 교사가 바로 이 책의 저자 존스턴이다.

#군주제 시대가 더 공화적?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는 무너졌지만 황실은 이보다 13년을 더 버텼다. 반란세력이 자금성에서 명목상의 황실을 유지하는 조건을 달고 황실과 ‘거래’한 결과 공화국이 수립됐다. 공화국은 푸이에게 황제라는 명목상의 칭호를 허용하고 재정지원을 약속한다. 물론 황제에겐 아무런 정치적·외교적 실권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타협 끝에 황실은 1912년 “신민이 열망하는 바를 살펴 우리는 천명(天命)을 알았다. 황제의 동의를 얻어 주권을 신민에게 부여하고, 공화국의 기초 위에 입헌정부의 수립을 선언한다”는 조서를 공표한다. 입헌군주정도 아닌 공화제 정부의 수립이 황실에 의해 ‘공표’되는 장면은 기이했다. 공화국의 수도에 황제가 존재하는 역설이 벌어진 것이다.

황실은 권좌를 넘겨줬지만 공화정부는 무능했다. 저자는 이를 ‘1명의 군주는 사라졌지만 1만 명의 새로운 지배자가 나선 상황’이라고 꼬집는다. 잦은 권력 교체, 위안 스카이(1859~1916)의 황제 등극 기도 등 불안정한 권력은 인민의 삶을 방기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당시 중국은 ‘공화주의자가 없는 공화국’이었다. 저자는 군주제 시절이 더 공화적이었다는 언급까지 한다.

#인간미 넘치는 소년 황제

저자 존스턴은 1919년 처음으로 황제를 알현하고 그의 영어 교사가 된다. 당시 푸이는 13세 소년이었다. 저자는 “국내외 정치에 확실히 지적 흥미를 갖고 있으며 총명하며 뛰어난 유머 감각을 갖고 있다. 예의가 발라서 전혀 거만한 구석이 없다”고 이 몰락한 황실의 마지막 황제를 기록한다. 폐위된 군주였지만 소년 푸이는 여전히 ‘금지된 도시’(the Forbidden City·자금성의 영어 표기)의 ‘황제’였다. 혁명 뒤에도 자금성엔 1000명의 환관이 소년 황제를 보필했다.

소년 황제의 교육은 엄격했다. 오전 5시30분에 첫 수업이 시작됐고, 2시간 단위로 오후까지 매일같이 황제의 스승들이 강의에 나섰다고 한다. 일요일도 없었다. 저자는 당시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복위될 가능성이 전혀 없음직한 황위에 오를 준비를 하는 것보다는 그의 육체적·도덕적 건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히며 연민의 정을 비치기도 한다.

서예에 능했던 소년 황제는 영문 펜글씨에도 재능을 보였다. 책에는 푸이가 직접 쓴 영문 펜글씨 자료도 수록됐다. 묘하게도 ‘백성이 가장 귀하며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이 가장 가볍다’라는 맹자의 가르침을 영문으로 옮긴 것이다. 또 푸이는 가명으로 당시 문예잡지에 한시를 기고할 만큼 시문에 능했다.

이 책은 출간 당시 유럽 독서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수립한 만주국(1932~1945)이 국제 정치에서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을 시점이다. 저자는 “황제는 강한 애국심을 품고 있었고, 옛 신민들이 부당하게 받는 고통을 진심으로 동정했다. 중국의 진보와 번영을 열망했기 때문에 공화국의 나태한 연금 수령자라는 자신의 지위에 굴욕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기록한다. 또 31년 푸이가 만주로 가게 된 것은 일제의 공작 정치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의 선택한 길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기록 때문에 이 책은 2차 대전 종전 뒤 전범재판 과정에서 다시 주목 받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이 책이 마오쩌둥의 영어 공부 교재로 쓰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책은 청나라 말기 격동의 정국에 대한 당대의 기록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저자의 주관이 개입되긴 했지만 신해혁명이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는커녕 공화제에 대한 이해조차도 낳지 못했다는 지적 등은 참고할 만하다. 거시적 사회변동이 교과서의 기술처럼 손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책에는 인도의 시인 타고르와 푸이의 만남 등 다양한 일화도 소개됐다. ▶황실의 혼례 ▶황제의 탄신례 등 청대 궁중의 법식에 대한 세심한 기록도 흥미롭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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