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올 勞使관계 전망 이동찬 經總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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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립해야 할 한해가 시작됐다.국회의 노동관계법 변칙통과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은 올해 노사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달라진 노동법 아래서의 노사관계도 과거와는 달라질 것이다.경기침체를 이겨내기 위한 국 가경쟁력 강화도 절실한 과제다.재계의 사용자측 대표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이동찬(李東燦.75.코오롱그룹 명예회장)회장을 박병석 경제2부장이 만나 올해 노사관계 전망등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현 경제상황으로 볼때.선(先)물가동결,예 산동결 후(後)임금동결'등 비상조치가 필요한 시기라고 주장했다.
[편집자註] -지난해말 여당인 신한국당이 단독으로 노동관계법을 날치기 처리한 후유증이 무척 큽니다.사용자측을 대표하는 경총회장으로서 어떻게 보십니까.
“노동법 내용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으나 우리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대국적인 견지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됩니다.가능한한 노사화합의 차원에서 원만하게 처리되길 기대했습니다.
경영계는 앞으로 한국경제의 위기극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노조가 걱정하는 부분도 노사간 신뢰구축을 기본으로 해 대화로 풀어나갈 것입니다.지금은 노사간의 의견대립보다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를 되살려 하루빨리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일이중요합니다.” -새로운 노동법은 복수노조를 인정하되 이를 유예시키는등 재계의 주장이 상당히 반영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부안이나 국회안 모두 경영계에는 미흡하다고 봅니다.그러나 세상일이란 상대가 있는 것 아닙니까.국회 통과안은 최선보다는 차선을 택했다고 봅니다.복수노조 문제는 우리의 특수상황을 인식한다면 3년후에 실시하는 것도 시기상조라고봅니다.경총이나 전경련이나 복수노조가 언젠가 허용돼야 할 것이라는 대원칙엔 찬성하지만 지금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었지요.
확실한 것은 복수노조가 언젠가는 허용될 수밖에 없는 사실이란점입니다.이것은 노동운동에서의 결사의 자유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이를 적용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주체사상으로 무장한 북한이 여전히 존재하■ 등 우리만의 특수사정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복수노조 3년후' 시기상조 -복수노조 도입 원칙에는 반대하지 않았다면 도입 가능한 시점은 언제로 봤습니까.
“노동법 개정후 4~5년쯤 지나 우리 경제가 회생될 경우 다시 논의해볼 수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었습니다.
상급단체 허용도 상당기간 지난 뒤에 인정돼야 한다는 뜻입니다.국회에서 상급단체에 대한 복수노조 인정을 3년후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상급단체에 먼저 허용되면 사실상 개별사업장에선 복수노조 금지는 무의미해집니다.단위 사업장마다 이때부터 복수노조 도입을 기정사실화해 우후죽순처럼 복수노조 설립에 나설 것입니다.민주노총이 합법화되면 각 사업장에서 노조결성에 나서더라도 법적으로만 인정되지 않을 뿐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민주노총이 불법으로 출범할 당시 10만명에 불과했던 조직원이 출범 5년후에는 50만명으로 증가했듯 민주노총이 합법화된다면 세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죠.
한국노총도 선명성 경쟁에 나서 과격한 주장을 펼칠 것으로 보여엄청난 혼란이 예상됩니다.” -그동안의 노동법 협상과정에서 복수노조 허용문제등에 대해 재계내에서도 경총과 전경련의 입장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기본적으로는 재계의 노동법 개정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똑같습니다.다만 복수노조 허용등 노동계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입니다.” -노동계에선.기업이 잘될 때 경영자들이 무엇을 하다 기업이 어려워지자근로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느냐'는 비판을 합니다.또 경쟁력 약화의 근본원인은 고임금이 아니라 기업이 잘될 때 기술개발과 설비투자등을 소홀히 한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30대 그룹이 앞장서서 임금을 올릴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임금이 높다고 불평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일견 맞는 주장이기도 하지만 30대 그룹이 언제 임금을 올리고 싶어 올렸습니까.노조에 대한 마땅한 대항 수단이 없어 노동자 가 백전백승 할 수밖에 없는 종전 노동법아래서 노조에 밀려 임금을 올려주었던 것입니다.
금리.물류비.지가등이 비싸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이것은 정부가 해야할 일입니다.노사관계에서는 무엇보다 임금이 중요합니다.과거 호황때 벌어놓은 돈으로 사용자들이 밥 더먹고 양복 두벌 껴입은 적 없습니다.대부분 시설확장 이나 기술개발에 쓴 것입니다.엄청나게 투자했지만 하루 아침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 뿐입니다.
물론 임금이란 높을수록 좋은 것이지요.다만 우리나라에선 생산성에 비해 임금수준이 높은 것이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과거에는바이어들이.한국상품이 선진국과 품질수준은 엇비슷한데 값이 싸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요즘엔 .선진국보다 품질이 다소 처지는데도 값은 똑같이 달라고 한다'고 불평합니다.고임금에 따른경쟁력 약화가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최종현 전경련 회장이5년간의 임금동결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도 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물가동결.예산동결을 먼저 실시한뒤 임금동결을 실시하자는 것입니다.임금동결을 포함한 모든 것에대해 비상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싱가포르등 다른 경쟁국들도 급할 때는 그렇게 했습니다.
근로자들은 비난하겠지만 재계의 이같은 심정은 임금 뿐만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의 경제비상 조치를 실시해야만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임금동결 건의에는 기업들의 공산품값 동결도 포함한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그래야만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근로자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자기희생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대만등 경쟁국과 달리 사회보장제도도 미흡하고 사교육비 부담이 많아 경쟁국들과 임금을 단순 비교하기는 무리가 아닙니까.
“사회보장제도가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은 인정하지만 우리의 사회복지 수준이 그리 낮은 것만은 아닙니다.고용보험제 도입등 각종 제도가 발전,개선되는 과정에 있다는 점을 감안했으면 합니다. 사교육비 부담은 교육열이 과열되다 보니 나온 사회적 문제입니다.일부 근로자들이 유치원비.유아학원 비용까지 부담해 달라고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것입니다.그런 것까지 기업이 맡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지난해말 통과된 노동법개정안 협상당시 재계의양보할수 없는 기본 입장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로서는 당초 복수노조 유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상급단체만 복수노조를 허용하더라도 상급단체간 노.노 다툼이 벌어지는등 혼란이 예상됩니다.때문에 최악의 경우 우리의 요구를 좀 덜 반영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복수노조 허용만은 반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복수노조 도입을 놓고 논란이 크게 일어나자 차라리 하부 사업장에까지 복수노조를 완전 인정해주는 대신 노조설립요건 강화,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배타적 교섭단체 인정,정리해고제 인정등 사측 대응수단을 강화해 주었으면 했던 것이 솔직한입장이었습니다.아예 노동법 개정을 안하더라도 복수노조 도입에는찬성할 수 없다는 사람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노동법 개정에 대한 재계의 입장이 첫째 복수노조 불인정,둘째 사용자의 대항수단을 인정한 뒤 하부단체까지 복수노조 전면 인정,셋째 복수노조 상당기간 유보,넷째 종전 노동법 고수등의 순이었다고 정리해 볼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재계내에서도 비공개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할 때는 의견이 일치하다가도 공식적인 자리에 나서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기업들도 많았습니다.그러나 속마음으로는 다들이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다만 창구역할을 맡은 우리와 다소다르게 보였을 수는 있습니다.” -개정된 노동법에서는 복수노조불인정이라는 재계의 희망과는 달리 복수노조를 3~5년뒤로 유보했는데 그렇다면 차라리 개정을 안하고 이전 노동법을 그대로 놔두는 것이 낫다는 생각입니까.
“개정전 노동법대로는 안되겠기에 정부의 개정안을 존중하되 복수노조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했던 것입니다.종전 노동법에서는 노동자가 마음만 먹으면 사용자가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사용자는 직장폐쇄밖에 방법이 없지만 이 또한 근로자들을 잘 달래라는 요구가 이곳저곳에서 들어오기 때문에 쉽사리 사용하기 힘들고….
파업기간중 무노동무임금 원칙도 70~80% 이상의 기업이 어떤 명목으로든 대부분 임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효과가 없습니다.
때문에 파업을 선동한 사람은 교섭이 타결되건 안되건 손해를 보지 않고,사용자는 파업 때문에 회사가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근로자들은 정리해고제 허용을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실제 실시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정리해고제 도입으로 대량 해고가 있을 것이라는 노동자들의 염려는 우리나라 기업 풍토상 사실상 어렵습니다.지금보다야 해고를 다소 쉽게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4~5년은 지나 봐야 정리해고제에 대한 노사간의 풍토가 조성될 것입니다.
아마도 기업들은 근로자들이 해고 걱정으로 강하게 나올 수 없도록 하는 정도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지 그것을 실제로 이용하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현재 10~20%의 잉여노동력을 안고 경영하는 실정입니다.화섬업종의 경우 인건비가 전체원가의 15%까지차지할 정도입니다.경쟁국은 10%미만이지요.” -말씀대로 기업에 잉여인력이 있다면 이제 정리해고제가 채택된 이상 실제로 이들을 정리해고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일부는 이뤄지겠지요.그러나 개정 노동법에서는 사용자가마음대로 정리해고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무엇보다 근로자들이 응해야만 가능합니다.당초 노측 대표들은 정리해고 이전에 자신들과의.합의'를 요구했으나 인사권은 사용 자에게 있기때문에.협의'로 된 것입니다.” -최근 재계는 명예퇴직.감원바람과 함께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내년에도 감원바람이 계속 불겠지요.정리해고제도 도입됐고요.
“노동법 개정안의 통과로 아무래도 약간의 감원이 예상됩니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인건비를 줄여 생산성을 늘리려는 기업은 있게마련이니까요.” -그동안의 노개위 활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예술적인 정치작품을 만들려고 한 것이 다소 과욕이 아니었나싶습니다.노.사 합의로 노동법을 개정한 나라는 전세계에 한 나라도 없습니다.노사합의로 이상적인 노동법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은 참으로 좋은 것이지만 사실상 합의가 어렵다는 점을 인식,2~3개월전에 단념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끝으로 앞으로의 노사관계와 관련해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정말로 우리 경제가 어려운 시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우리의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데는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노동생산성을 넘어선 임금인상도 원인입니다.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사관계가.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신뢰와 협조'의 관계로 바뀌어야 합니다.
일반 국민들은 이같은 노사의 노력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과소비를 자제하고 근검절약의 국민정신을 되살리는등 뒷받침을 해줘야 합니다.이렇게 노력할 때 우리 경제는 다시 살아날 수 있으며 이 시기를 놓치면 앞으로 상당히 어려워질 것입니다 .법이 바뀌어도 정신과 자세가 바뀌지 않으면 허사가 돼버리고 맙니다.그동안 노동법 개정과정에서 있었던 논란도 내 잘못이냐,네 잘못이냐를 따지지 말고 모두의 잘못이라 접어두고 다시 출발하는 계기가돼야 하겠습니다.” 李회장은 인터뷰를 마치며“타의에 의해 경총회장을 맡고있다”며“가까운 시일내 후임자를 선정해 넘겨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정리=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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