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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예비후보>4.박찬종 신한국당 고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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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차기 정권의 국정운영 틀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문민 1기는 이전시대와 구분되는 시대의 한 틀을 이뤘다고 봅니다.계엄적 강권통치와 안기부등 공안수사 기관에 의한 고문이나 언론통제등이 사라졌고 지방자치도 시작됐습니다.대통령이 정치자금을 한푼도 안받고 있다는 것은 과거와의 중요한 차이점입니다.반세기에 걸쳤던 아스팔트 위의 투쟁의시대도 끝났습니다.그러나 이게 잘 실감이 안가는건 경제.안보.
교육정책등 민생부문의 시행착오 때문입니다.차기의 문민 2기 정권은 문민 1기가 만들어놓은 틀을 바 탕으로 그걸 공고히 해 21세기를 열어나가야 합니다.특히 남북통일의 기반조성을 위한 리더십 발휘가 필요합니다.” -어떤 식의 리더십 발휘가 필요하다고 보는지요.
“대통령이 국정현안의 중심에 서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직접 국민들을 설득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리콴유(李光耀)식 모형입니다.그걸 저는 역동적(力動的)리더십이라고 봅니다.노동법의 처리과정에서 그런 역동적 리더십이 발휘되지 않았다는 게 좀 아쉽습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더군요.
“국민들에게 대단히 감사하고 있습니다.저에게 과분하게 나와 오히려 긴장하고 있어요.기본적으로 대통령선거와 서울시장선거에서저를 지지했던 분들의 지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지지도가 계속상승추세죠.
“문민 2기가 될 차기정권이 어떤 성격을 띠어야 할지를 국민들이 판단하고 있다고 봐야겠죠.좀 더 지켜봅시다.” -여론조사의 인기는 높지만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평가가 낮습니다.조직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고요.
“(얼굴이 잠시 붉어졌다)그게 현실이라면 인정해야죠.그러나 그동안 저의 정치행로를 보면 이해가 갈 겁니다.저는 두차례 삭발을 했었습니다.87년 YS-DJ의 단일화 촉구때와 89년말 5공 청산에 합의했을 때입니다.또 부산 동의대사건후 여야가 화염병방지특별법을 만들 때 혼자 항의했습니다.자기들의 견해에 반대하니 싫어할 수밖에요.여야 모두로부터 독불장군으로 낙인 찍혔습니다.그뒤 8년간 혼자 낭인처럼 떠돌면서 더욱 그런 이미지가굳어졌고,하지만 이 박찬종이가 아직 살아있는건 그런 위기의 순간 마다 마다에 말없는 다수가 지지해줬기 때문입니다.신한국당에입당한 다음에는 별로 비친화적인 행동을 한 게 없는데 아직도 그리 평이 나쁩니까(웃음).” -.무게가 없다'.가볍다'는 소리도 듣고 있습니다.
“그런 비판은 충고로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하지만 그동안의우리네 정치판이란게 자신의 소신을 정정당당하게 표출하고 심판받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뒷전에서,밀실에서 서로 쓱싹쓱싹 주고받고 결정해 버리는 경우가 더 많지 않았나요.민주 정치의 생명은말인데 말 자체를 터부시하고 백안시하는 풍토가 많았던 겁니다.
” -공화당시절 유신체제를 지지한 글을 썼죠.
“저는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이 유신을 하기 전에 정치인이 됐습니다.그런데 75년에 저보고 국제신문에 유신 찬양 글을 쓰고,부산일보의 좌담회에 나가 찬성하라고 (당지도부가)지시하더군요.당시 상황에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랬어요.그러 나 제가 중앙당에서 유신을 기획하고 홍보한건 아닙니다.하지만 마음이 안좋아.그뒤 여당내의 야당으로 싸웠고 정풍운동에도 앞장섰습니다.”-공화당에 있다가 야당으로 변신하고 3金청산을 외치다가 다시 신한국당에 입당한건 지조에 문제가 있는건 아닙니까.
“(난감한 표정으로)그같은 이유때문에 저도 입당전 두달동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YS는 이제 물러갈 분입니다.한데 문민시대라고 만들어 놓았는데 신한국당이 소수가 돼버리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오게될 겁니다.YS에 대해 불만을 가 질 순 있지만 YS는 결코 헌법을 파괴하진 않았습니다.” -金대통령은 3당합당의 변으로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갔다'는 논리를 폈습니다.朴고문의 입당도 결국 여당조직을 이용하려는 전략적측면 때문 아닌가요.
“(잠시 뜸을 들인뒤)신한국당에 들어오니 호랑이는 없습디다(웃음).제가 남의 집에 들어온건 아닙니다.민주계는 저와 함께 민주화운동을 하던 한뿌리입니다.따라서 원대복귀한 측면도 있습니다.나머지 사소한 차이점은 얼마든지 동화될 수 있 는 거라고 봅니다.” -총리기용설이 있는가 하면 진짜 목표는 차기 서울시장이란 관측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실무근입니다.저는 이미 여러차례 정치권도 이제 한글세대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해왔어요.미국의 클린턴 대통령도 저보다 일곱살이 적습니다.오히려 저는 나이가 좀 많다는 생각조차 할 정도입니다.사회의 각 분야를 다 50대 가 지도해 가는데 정치판도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합니다.” -이미 대통령선거와 서울시장 선거에서 두번씩이나 검증받았는데 또 출마하는건 욕심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어요.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건 어차피 안되더라도 3金체제에 도전하겠다는 뜻이었어요.서울시장은 당선도 가능했지만 결국 실패했는데저로선 최선을 다했어요.3金체제에 의해 좌절된게 과연 검증받은건지,그래서 재도전하는걸 또 욕심이라고 할수 있 는 건지….”-경선은 어떤 방식으로,언제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완전경선이 돼야지요.국민들에게 어색하게 보이면 안됩니다.저는 아직 한번도 경선을 전제로 당직자와 당원을 접촉한 사실이 없습니다.손님으로 들어왔는데 휘젓고 다니며 해달라는 것도 도리에 안맞고 때도 아니죠.하지만 대의원들이 누구의 지시로 찍지는않을 것이란 확신은 하고 있습니다.적당한 때가 되면 저도 당원을 만나 포부를 밝힐 겁니다.경선시기는 야당보다 빠를 필요가 없어요.” -완전경선이란 대통령이 철저히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말입니까.
“대통령이 견해야 밝힐 수 있겠지만 낙점으로 해석되는 분위기는 안될 것이라고 봅니다.” -경선에서 패하면 탈당할 것이란 관측이 있습니다.
“결과를 운명으로 받아들일 겁니다.1백% 승복할 거요.” -이회창(李會昌)고문보다 선수(選數)로 보나 키로 보나 자신이 위라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는데.
“(당시 보도가 나가게 된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 뒤)전적으로오해예요.李고문께는 해명하고 이해도 구했어요.” -.박찬종의 경제리포트'란 책에서 작지만 강한 정부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걸어떤 식으로 이뤄야 한다는 말입니까.
“효율성이 강한 정부를 말하는건데.물론 이게 무조건 정부부처의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불필요한건 대폭 줄여나가지만 통계나 정보분야등 중요한 부분은 더욱 강화할 필요도 있어요.” -경제에서 힘의 논리가 타파돼야 한다고 주장했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무역기구(WTO)체제가 들어서지만 않았다면 재벌이 편의점까지 하는걸 강력히 비난했을 겁니다.하지만 지금은 말하기 곤란합니다.재벌이 손을 떼어도 월마트나 다른 외국 대자본이 들어올 테니까요.제 생각은 이건 법규제 이전에 대화와 토론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재벌도 앞으로 과거 운영방식으론 자체 존립이 힘든 상황입니다.국제경쟁력을갖출 수 있도록 대기업 스스로 전문화.집중화를 해나가야 하고 정부는 그걸 도와줘야 합니다.법이 아 니라 시장경제원리를 도입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라인화돼야 합니다.우리는 경공업을 너무쉽게 포기하는 바람에 손해가 막심해요.” -남북한 경협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기본적으로 전 정경분리가 옳다고 봅니다.간섭하지 않는게 좋을 것같아요.” -현 정부의 대북(對北)정책이 왔다갔다 한다는비판이 많은데요.
“내가 만일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봐도 참두려워요.물론 남북문제는 총괄적 통찰력을 가져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일관성이 결여된 부분이 있었던게 사실같아요.”-핵보유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비핵화선언은 성급했던 것같아요.주변국과의 관계도 있겠지만 평화적 목적의 핵개발까지 안하겠다는건문제 아닌가요.” -여성들로부터의 인기는 높으나 정작 여성계에선 朴고문이 여성문제 해결에 별로 도움된게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지적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4반세기동안 정치현장에 있으면서 싸움만 했지 여성문제를 돌이켜 보지 못했습니다.21세기는 정보화 시대로서 정보인프라 구축에 여성의 섬세함이 더많이 필요해질 걸로 봅니다.무엇보다 중간관리층에 여성들 을 많이 발탁하는게 필요해요.” -포르노관을 허용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20년전 영국에 갔는데 피카디리 서커스(런던시내 번화가의 명칭)에서 누드쇼를 하는 곳이 관광코스에 잡혀있습디다.별로 나빠 보이지 않던데.인간의 욕망을 억제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하지만 질서는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요즘 아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포르노를 마구 보고 있다는데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해요.” -기초과학 육성책에 대한 견해를 갖고 있나요. “서울대가 고시학원화하고 있다는데 참 우울한 뉴스예요.
프랑스 드골대통령은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기초과학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고 그게 드골 퇴임후에 성과가 나타났어요.엑조세미사일이나 미라주 전투기,항공 첨단설비등입니다.단임 대통령은 비 인기분야에 대해서도 투자해야 합니다.개인적으론 대학원 중심 대학이반드시 생겨야 한다고 보고요.” -신정당때 모후보로부터 받은 돈 때문에 소송까지 갔고 결국 법원에서 패소했죠.
“당시 선거가 끝나면 당에 국고보조가 나올것으로 판단하고 돈을 빌린겁니다.개인 채무가 아니에요.하지만 선거법이 바뀌어 국고보조를 제대로 못받았고 제가 당시 당 대표로서 영수증을 써줬기 때문에 결국 집을 경매까지 잡히게 된 겁니다.” -재산이 마이너스라는데 어떻게 직원 수십명을 둔 개인사무실을 유지합니까. “소송에서 져 빚으로 잡혀있는 13억원을 빼면 적자가 아니에요.부산의 공증사무실과 내가 속했던 공인회계사법인에서 돈이 좀 나오고 후원모임인 우당회에서 조금씩 도와줍니다.개인적인 친분관계가 있는 사람들로부터도 도움받지요.직원은 수십명 도 아니고….난 당대표까지 했던 사람이 돈이 마이너스인게 좀 감동적인측면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난번 서울시장 선거때 보니 날 빚쟁이로 몰아버립디다.당선되면 돈빼내 개인 빚 갚을 거라고.이번엔그냥 중립적으로만 봐주길 바라요.” ▶생년월일=1939년4월19일 ▶출생지=진주(모친 친정,고향은 부산) ▶본관=밀양 ▶신장.체중=172㎝,74㎏ ▶재산=-5억5천7백만원(실제로는 플러스이지만 소송에서 져 채무가 된 13억원을 합치면 마이너스라고 설명) ▶가족=노모(82)와 부인,1남2녀(모두 출가) ▶결혼=62년5월,고교때부터 사귀던 정기호(鄭基鎬)씨와 ▶병역=해군 해병대 군법무관 제대(대위) ▶종교=가톨릭 ▶학력=경남중.경기고.서울대 경제학과.서울대경영대학원 ▶경력=고시사법.행정과.공인회계사 합격,서울.춘천지검 검사,5선의원(9.10.12.13.14대),한국공인회계사회장,민주당 부총재,신정치개혁당 대표,14대 대통령선거 출마(신정당),서울시장선거 출마(무소속),신한국당 수도권 선대위원장 .상임고문 ▶취미=독서 ▶선호음식=설렁탕.칼국수 ▶주량=맥주 3~4병.
▶존경하는 인물=김구.마하트마 간디 ▶애창곡=고향초 ▶애독서=백범일지 ▶아호=우당(尤堂:어리석고 허물많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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