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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박달대게와 홍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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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대게는 영덕대게 중에서도 따로 관리 받을 만큼 맛있다 하는 놈이다. 지난 봄에 박달대게찜을 감명 깊게 먹은 기억이 있다. 분홍빛이 도는 하얀색 속살이 어찌나 토실하고 차지던지. 몸통에 든 장맛은 또 어쩜 그리 구수하고 혀끝에 착착 감기던지. 특히 오동통한 집게 다리 살과 누르스름한 장의 맛은 조금 보태 말하면 눈물이 날 정도 였다고나 할까. 입과 혀가 한번 호사를 부렸으니 계속 그 맛을 느끼고 싶은 욕심은 나지만 그 값이 만만찮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6월1일부터 10월 말일까지는 대게를 잡을 수 없는 금어기다. 없어서 못 먹는다 생각하니 눈앞에 두고도 못 먹어 괴로운 것 보단 낫다며 위안을 삼았다.

얼마 전 일 때문에 영덕을 지나다가 강구항엘 들렀다. 박달대게를, 아니 영덕대게라도 먹고 갈 작정으로 두 눈을 부릅뜨고 직판장을 둘러봤다. 하지만 아직은 대게의 봉인이 풀리지 않은 상태. 러시아산, 북한산 대게들이 식도락가의 아쉬움 맘을 달래려고 대기 중 이었다. 그래 한번 먹어 볼까 생각 했지만 이왕이면 이 바다에서 잡힌 것을 맛보아야 하지 않나. 주홍빛이 선명하고 단단해 뵈는 홍게를 집어 들었다.

5만원에 활홍게 13마리와 덤으로 얻은 북한산대게2마리를 들고 근처 식당으로 갔다. 5000원에 게를 쪄주고 3000원에 가위와 찬들을 내 준다. 아무리 살아있는 홍게라도 찌기 전에는 반드시 죽은 것을 확인하고 찜통에 넣어야 한다. 살아 있는 것을 그대로 찌면 찌는 동안 몸을 비틀어서 몸통 속 게장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살아 움직이는 홍게를 먼저 미지근한 물에 넣어 움직임이 없을 때까지 기다린 후 배쪽이 위를 향하도록 찜기에 올린다. 15분간 찌고 난 후엔 또 10분 정도 뜸을 들인다. 찌고 나도 액체 상태인 게살은 식으면서 굳어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뜨거운 김이 빠진 후에 상에 오른다.

홍게는 일반 대게 보단 다리가 가늘어 다리껍질에 일일이 가위 질을 해서 발라 먹는 것이 귀찮기도 하다. 하지만 적당히 간이 배고 부드러운 홍게살을 먹고 나면 나도 모르게 그 다음 다리 살을 발라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대게를 먹다 보면 다리의 맨 끝 마디를 부러뜨려서 당겨보면 맛살처럼 살 전체가 통째로 빠져 나오는 때가 있다. 간편하게 빠지니 좋긴 하지만 사실은 살이 제대로 차지 않았단 뜻이다. 말 그대로 살이 꽉 찬 것은 살과 껍질 사이 틈이 없어 살이 ‘쏙’ 하고 빠지는 일이 없다.

몸통에 들어 있는 장은 따로 대접에 부어둔다. 한 술 떠서 맛을 보면 바다향이 가득 배인 꿀장을 먹는 것 같다. 박달대게만 그렇게 맛있는 줄 알았더니 홍게도 의외로 살이 많고 맛이 좋다. 따로 모은 장에 따뜻한 공기밥과 참기름, 부순 김을 넣고 슥슥 비벼 게장비빔밥을 만든다. 구수한 단맛이 나는 장 맛을 보고 나니 어느새 박달대게는 잊고 홍게에 푹 빠져 버렸다.

영덕대게, 박달대게가 베스트 샐러라면 홍게는 여태 존재감이 미약한 스테디샐러였다. 홍게는 다른 대게와는 달리 수심 400~2000m의 깊은 바닷물에서 사는 심해어종이다. 7월10일부터 8월20일까지의 금어기간을 제외하곤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연중 잡아 올릴 수 있다. 따라서 일반 대게에 비해 많이 잡히고 사시사철 먹을 수 있으며 가격도 저렴하다. 때문에 얇은 지갑 걱정으로 대게를 실컷 먹을 수 없을 때 차선책으로 홍게를 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안타깝게도 다른 대게보다 낮은 수준으로 평가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홍게는 갑각류 중에서도 키토산을 가장 많이 함유하고 있다. 따라서 당뇨나 암, 지방간, 고혈압 등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눈물 날 정도로 감동적인 맛은 아니더라도 이 가격에 이 정도의 맛이라면 나는 박달대게 보다 홍게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제는 대게의 금어기가 끝나긴 했지만 동해에 가게 되면 홍게를 꼭 한번 맛보고 올 것을 권하고 싶다.

김은아 칼럼니스트 eunahsty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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