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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왕 총리’ 푸틴 대통령 복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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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대통령 복귀설로 러시아 정계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5월 정권 교체 이후 잠잠해졌던 ‘푸틴 재집권론’이 또 다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밀어붙이고 있는 대통령 임기 연장 개헌안이다.

메드베데프는 4일 국정연설에서 현행 4년인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리는 헌법 개정안을 제안했다. “러시아와 같은 큰 나라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는 임기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11일 개헌안을 국가두마(하원)에 제출했다. 푸틴도 12일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제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누가, 언제 차기 후보로 나설지를 언급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며 여운을 남겼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左)이 12일 모스크바 교외 대통령 관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이타르타스 모스크바=연합뉴스]


◆개헌안 국회 통과 확실=하원은 14일 개헌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야당은 “4년 중임을 허용하고 있는 현행 제도로도 대통령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이 450개 의석 가운데 개헌선(전체 의석의 3분의 2)을 웃도는 315석을 차지하고 있어 통과가 확실시되고 있다. 게다가 하원은 통상 세 번의 법안 검토 회의를 했던 절차를 무시하고 하루 만에 표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크렘린의 거수기’로 불리는 하원에서도 유례가 없는 파격적 조치다. 상원 심의 역시 통과의례에 불과해 개헌안은 사실상 채택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푸틴 대통령 복귀 사전 포석”=2000년부터 2기를 연임한 푸틴은 헌법상의 3선 연임 금지 조항 때문에 지난 5월 자신이 후계자로 지명한 메드베데프에게 권좌를 넘겨줬다. 그러나 총리로 물러앉은 푸틴에 대한 지지도는 아직도 80%대를 유지하고 있다. 메드베데프는 ‘얼굴마담’일 뿐 중요한 결정은 여전히 푸틴이 내린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상왕 총리’ 푸틴의 대통령 복귀설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현행 헌법은 3연임만 금지할 뿐 연임 이후 물러났다가 재출마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도 메드베데프가 사임하면 푸틴이 재출마할 수 있다. 그런데도 메드베데프가 대통령 임기를 연장하려 하기 때문에 “메드베데프가 푸틴을 위해 대통령 임기를 더 늘린 후 물러나려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현지 일간 베도모스티는 6일 크렘린궁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대통령 임기 연장 개헌안은 푸틴이 대통령으로 있던 지난해에 이미 만들어졌다”며 “이 시나리오에 따라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조기 사임하고 푸틴 총리가 내년 대선을 통해 크렘린에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 13일 “개헌안을 의회에 제출했지만 이것이 조기 사임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일단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푸틴 복귀 시나리오=가장 유력한 것은 두 가지다. 우선은 메드베데프가 금융위기에 따른 경제 정책 실패를 이유로 올해 사임하고 내년에 조기 대선을 실시하는 것이다. 푸틴이 69세가 되는 2021년까지 통치할 수 있는 방안이다. 또 하나는 푸틴이 메드베데프의 임기가 끝나는 2012년 대선에 출마해 72세가 되는 2024년까지 집권하는 것이다. 푸틴 측근들은 메드베데프가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전에 권력을 되찾아 와야 한다며 첫째 시나리오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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