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서울대는 거대한 고시학원 지적한 최대권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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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서울대 법대 최대권(崔大權.59.공법학과)교수는 최근 논문.
학부교육과 대학교육'에서 대학교육을 파행으로 몰고가는.주범'으로 사법시험제도를 지목하고 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특히.서울대전체는 거대한 고시학원'.서울대 법대 수강생의 절반에서 3분의2는 인문대.사회대.사범대.자연대.공대 학생'.법학전공 대학원생의 80~90%는 병역연기 혜택을 받는 사시등 국가고시 준비생'이라는 사시제도의 폐해 지적(본지 12월26일자 1면 참조)이 크게 주목받았다.
방학으로 인적이 뜸한 관악캠퍼스 법대 교수연구실에서 崔교수를만났다. -논문 내용이 보도된 후 주위 반응은 어떠했습니까.학교 내부에서 힐난하는 목소리는 없었습니까.
“친구들한테서 전화가 많이 왔어요.우리나라 법학교육의 문제점을 아주 속시원히 파헤쳤다고 하더군요.일부는.몸담고 있는 대학을 비판해도 괜찮으냐'며 걱정도 해줬습니다.그러나 서울대 안에서는 질책이 전혀 없었어요.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알고있던 사실이거든요.법조계에서도 전혀 반응이 없어요.하지만 솔직히 말해 근무하고 있는 학교를 너무 비판한 것같고.영웅주의'로 비칠까 걱정됩니다.논문은 대학 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서 있는 그대로 썼지요.학생은 정상적인 대학생활을 통해 학문을 연마해야 합니다.또 민주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교양을 배우고 자질을 함양해야 합니다.도서관에 앉아 고시공부만 하면 이런 것을 배울 수 없습니다.” -서울대 법대생의 입학성적은 국내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들의 공부하는 태도는 어떻습니까. “법대 다닌다고 하지만 대부분 사시과목에 해당하는 법학과목만 수강합니다.다른 법학과목은 그것이 설사 균형적인 법학적 사고능력을 기르는데 중요한 것이더라도 건성으로 학점이나 따는데그칩니다.따라서 학생들은 사시과목에만 몰리고 그 외 과목은 학점을 잘 주는 교수를 찾아 수강하는게 보통입니다.예를 들면 로마법.영미법등의 강의는 인기없는 편입니다.자연히 수강생이 적은강의는 폐강되기도 합니다.또 서론.본론.결론식으로 요점을 잘 정리해주는 교수들이 인기가 높습니다.
법대에서 채택하는 교과서도 대부분 사시등 국가고시를 준비하는데 도움되도록 정리가 잘 돼 있을 정도입니다.한마디로.수험서'라고 할 수 있지요.학생들은 나머지 시간을 고시과목의 수험서를반복해 독파하기 위해 전적으로 도서관에서 지냅니다 .그래도 서울대는 나은 편입니다.국내 법대의 상당수는 사시등 국가고시 합격자를 늘리기 위해 고시특강을 개설하고 모의시험을 치르는등 대학이 아니라.학원'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합니다.적어도 서울대 법대에는 고시특강이 없습니다.” -법대생은 물론 다른 단과대생들이.고시병'에 걸리는 이유를 어떻게 보십니까.
“우선 많은 선배들이 고시공부를 하니까 상당수 학생이 법대에입학하자마자 그해부터 사시등을 준비합니다.그러나 대학 분위기보다 부모.친지.고향 사람들의 기대가 주는.중압감'이 훨씬 클 거예요.지방에서 서울대 법대에 합격하면 당장“너 판.검사 되겠구나”하는 말이 나옵니다.지방에서는 지역 출신 학생이 사시에 합격하면 으레 플래카드가 나붙습니다.이런 상황에서 웬만한 의지없이 고시를 포기하고 학문을 하기가 힘들지 않겠어요.” -많은학생들이 고시준비에 매달려 발생하는 부작용은 무엇입니까.
“인문대.사회대.사범대.자연대.공대 교수들로부터.당신네 법대때문에 교육을 다 망친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그 단과대 학생들이 법대에서 강의받기 때문이지요.이들은 법대 고시과목 수강생의 절반 내지 3분의2나 됩니다.자기과 공부에 는 관심이 없고 고시과목이나 법대과목에만 신경쏟으니 결국 소속 학과의 정상적인 교육은 망가지고 말지요.” -사회 일부에선 서울대가.고시열풍'을 조장한다는 말도 있는데요.학점을 엄격히 준다든지,고시병을 고칠 수는 없나요.
“서울대 출신이 사시에 많이 합격하는 것은 우수한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지,고시열기를 조장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대학교육을 정상화하는데는 학교 힘만으로는 부족해요.누구든 사시에 합격만 하면 영웅시되는 사회풍토에서 학생들만을 탓할 수 없지요.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시에 합격,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유명법률회사에 취업하는 변호사는 월 4백만~5백만원의 고임금을 받는다지요.개미가 꿀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사시제도와 사회 전체의 토양이 바뀌지 않는한 어 렵다고 봐야하지 않겠어요.
” -결국 현행 사법시험 제도가 법학교육,나아가 대학교육을 망치고 있다는 말씀이신데….사법시험의 문제점은 뭡니까.
“첫째,사시든 행시든 국가의 중요한 기능을 수행할 고급공무원선발시험 요건으로 법대 졸업은 고사하고 대학졸업 자체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대학 졸업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사시에 응시할 수 있다는 것은 복잡화.전문화하는 현 대사회의 양상과 국제관계의 변화에 비춰볼때 비현실적이지요.따라서 학생들은 재학중 사시에 합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그 다음은 사시등 국가시험 출제유형이 대학의 정상적인 교육을 훼손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쳐야 합니까.
“우선 사시 응시 자격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과거에는 누구든지 시험에 합격하면 의사자격증을 준 적이 있었어요.그러나 지금은 의대를 졸업해야 의사가 된다는 것이 상식이에요.법학도 전문화가 상당히 빨리 진척되고 있습니다.법대 졸업생에 게만 시험기회를 주든지,적어도 대학은 졸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시험문제도달라져야 합니다.헌법문제라면.언론의 자유를 논하라'라든지,.신체의 자유를 논하라'는 식으로 출제됩니다.이런 유형의 출제는 논리적 사고나 법적사고가 필요없이 현 행 교과서를 암기,그대로쓰면 충분히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지요.학생들로 하여금 출제가능성이 큰 주제를 찍게 하고 답안작성 요령만 키워주지,문제를생각하고 분석하는 창의성을 키워주지는 못합니다.독일이나 미국은학교시험이나 사법시 험에 응용문제를 내요..길을 가다 A와 부딪쳐 넘어진 B가 뇌진탕으로 숨졌는데 이런 경우 A에게 살인죄가 적용되느냐'는 식이지요.문제를 복잡하게 내 법률가로서 분석력을 측정하는 겁니다.사시 문제를 고치지 않는한 대학교육은 절대 개선 될 수 없어요.현행 사시 출제방법에도 한계가 있어요.
지금은 문제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험 실시 며칠전 출제교수를 선정,즉석에서 문제를 내도록 합니다.하지만 사례위주의 문제를 내려면 적어도 한달정도는 필요하지요.” -사시등 국가고시 응시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사회적 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는데….형편상 대학에 못가는 사람도 있잖습니까.
“의대와 같이 생각하면 됩니다.내과를 보면 심장내과.순환기내과등 아주 세분화돼 있어요.법학도 세법.통상법등 전문화되는 추세지요.각 분야의 법률전문가를 키우기 위해선 전문적인 법학훈련을 시켜야 돼요.누구든 사시에 응시할 수 있다면 전문 법률가를키울 수 없어요.전문가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무를 생각한다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사실 대학갈 기회는 많습니다.전국 대부분 대학에 법대가 있고 방송통신대나 독학사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습니 다.” -법대의 교육과정은어떻게 개선돼야 하나요.
“전문 법률가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전문가도 두종류가 있지요.프로페셔널과 스페셜리스트지요.대학에선 법학지식을쌓고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프로페셔널을 기릅니다.프로페셔널이 사회에서 환경.노동.통상등 각 분야에서 몇 년동안 공부하고 실무를 익혀나가면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거예요.우리나라는 법정에서 변론하는 변호사는 많아도 법이론을 개발할 수 있는 전문 법률가는 거의 없어요.미국의 통상 책임자중에는 법률 전문가가 많아요.그들은 다른 나라 통상 담당 자들과 협상하면서 꾸준히 자신들에게 유리한 통상법 논리를 개발해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곤 하지요.특허법은 국제적으로 매우 중요해지는데 우리는 이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울 교육여건이 안돼 있어요.미국은 공과대 졸업자가 법대에서 다시 배 워 특허변호사가 되곤 해요.그러나 우리는 공대 출신은 법학지식이 없고,법률가는 공학지식이 없어 특허법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흔히 우리나라에는 사법 전문가만 있고 입법 전문가는 없다고 하는데.
“사무관 입법이란 말 들어보셨습니까.중앙 부처의 사무관이 팀장이 돼 법안을 제정한다는 뜻입니다.국회에도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전문위원은 거의 없어요.우리 생활을 지배하는 법 제정에 법률가들이 거의 관여하지 않는 겁니다.법제처에서 자 구(字句)수정을 하는 정도예요.과거에는 주사가 팀장이어서 주사 입법이라고 했지요.변호사들도 입법에는 전혀 관심없고 사법부에만 몰려 있어 모든 민생관련 법률이 행정공무원들에 의해 만들어지지요.”***事例중심 法교육 필요 -지난해 정부에서 로스쿨제도를 도입하려다 실패했습니다.왜 그렇게 됐습니까.
“기득권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판사.검사.변호사등 기존 법관그룹의 반대가 많았어요.로스쿨이 생기면 변호사수가 많아지기 때문이지요.법대에선.우리 법제도는 독일식인데 왜 미국식을 도입하느냐'는 반발도 있었어요.또 일부에서 법학교육계의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한 것도 이유겠지요.전문 법학교육은 무엇보다 먼저 학문연구와 연계돼야 합니다.그리고 교육내용은 사례중심이 돼야 합니다.” -비교법 관련 논문을 무단전재한 영국출판사와 저작권분쟁은 어떻게 해결됐습니까(崔교수는 지난해말 영국의 대형 출판사인 다트모스가 자신이 쓴 비교법 관련 영문 논문을 대학교재에무단전재한 사실을 밝혀내고 다트모스를 상대로 사과등을 요구했다). “얼마전 출판사측으로부터 공식 사과문과 저작권료로 1천1백달러를 받았습니다.저작권료를 너무 적게 청구한 것같습니다.”-.교수 공정임용을 위한 모임'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다른사람이 쓴 논문을 제출,교수가 되는등 대학사회의 임용비리가 적지 않은데.
“양식없는 행동이지요.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입니다.” -공무원생활 1년과 유학기간을 빼고는 줄곧 서울대에 계셨는데 보람이나후회는 없습니까.
“공무원은 체질에 맞지않아 그만뒀습니다.더구나 그 당시는 5.16직후라 행정부에 군인들이 많았거든요.보람이라면 판결등의 개념법학이 아니라 사회속에서 살아있는 법을 연구하는 방법론(법사회학)을 국내에 처음 씨뿌려 자리잡게 한 정도입니 다.나이 먹은데 비해 미미한 연구실적이 회한인 것같습니다.” 헌법.법사회학등을 강의하는 崔교수는.헌법학'.법사회학'.법과 사회'.통일의 법적 문제'.법사회학의 이론과 방법'등 저서와.헌법의 법적 성격'.입법의 원칙'등 1백여편의 논문을 썼다.그는 동갑내기 부인과 맏아들(25.대학원생).차남 (23.대학원생)을 두고 있다.崔교수는 등산을 즐기고 소주 한병정도는 거뜬히 마신다고 한다.이수성(李壽成)총리와 서울대 법대 양승규(梁承圭).심헌섭(沈憲燮)교수등이 대학 동창이다.

<정리=오대영.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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