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토막 펀드’ 자필서명해도 금융사 설명 미흡했다면 배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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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엔 주부 A씨가 자필 서명을 했음에도 판매사의 불완전 판매 책임을 인정했다. 판매한 은행이 투자자가 알아듣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우리파워인컴 파생상품 투자신탁 1, 2호’ 펀드 가입자들이 9월 19일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앞에서 “상품에 가입할 때 원금 손실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이승서 우리은행 PB사업단장(左)에게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렇지만 투자자들은 이번 결정도 과거 분쟁조정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불만이다. 판매사가 과연 투자자의 성향에 적합한 상품을 권유했느냐는 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융상품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에게 위험천만한 상품을 권유했다면 일정 부분 판매사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얘기다. 금감원은 이에 대한 판단은 피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도 투자자가 판매사의 실수를 딱 부러지게 입증하지 못하면 배상받기가 어려울 거란 분석도 있다.

◆분쟁 왜 일어났나=우리파워인컴펀드는 미국·유럽·일본·호주의 112개 주식으로 구성한 파생상품에 투자했다. 이 파생상품은 투자한 주식의 가격이 설정 때보다 65%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원금을 보장하게끔 설계됐다. 선진국 주식에 골고루 분산했기 때문에 2005년 11월 이 펀드를 팔 때만 해도 원금을 까먹을 확률은 거의 없어 보였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도 이 파생상품에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과 같은 A3 등급을 매겼다.

우리은행은 이를 근거로 “원금 손실 가능성이 우리나라가 부도 날 확률보다 낮다”고 광고했다. 여기에다 6년 동안 분기마다 연 6.7%에 해당하는 이자를 지급한다는 은행 설명에 퇴직자나 주부가 많이 가입했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 주가가 급락하면서 사단이 벌어졌다. 주가가 65% 이상 곤두박질한 종목이 속출하는 바람에 우리파워인컴 2호는 원금의 80% 이상을 까먹었다.


◆금감원 결정의 의미=금융상품을 둘러싼 분쟁에선 투자자와 판매사의 말이 엇갈린다. 이 때문에 그동안 금감원은 고객 확인란에 서명했느냐 여부를 중요한 판단 잣대로 삼았다. 자필 서명을 한 투자자의 편을 드는 데엔 인색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이번엔 판매사가 투자설명서를 건네주지 않은 데다 상품 광고가 투자자로 하여금 원금 보장 상품으로 오해하게 할 소지가 컸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감원이 배상 비율을 50%까지 인정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의 최상길 전무는 “이번 결정은 기존 금감원 분쟁조정보다 진일보했다”며 “펀드 관련 분쟁조정 신청이 크게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논란 이어질 듯=투자자들은 이번 결정이 1998년 러시아 펀드 분쟁에 대해 내린 법원 판결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당시 법원은 판매사가 투자설명서를 주지 않는 등 신의성실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실의 50% 배상 판결을 내렸다. 또 법원은 원금에 정기예금 이자까지 더해 손실액을 계산했다.

이와 달리 금감원은 펀드 대신 은행 예금에 가입했을 때 받았을 이자는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투자자가 분기마다 판매사로부터 받은 이자만큼을 손실액에서 뺐다. 투자자를 대변한 법무법인 한누리 김주영 변호사는 “금감원 계산대로라면 보상액이 원금의 50%가 아니라 30%밖에 안 된다”며 “피해자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말했다.

판매사가 투자자의 성향에 맞는 상품을 권유했느냐는 ‘적합성 원칙’도 따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금융상품 지식이 별로 없는 주부나 은퇴 고령자에게 위험이 큰 상품을 판 것 자체가 판매사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엔 투자설명서 교부나 과장 광고 여부와 상관없이 판매사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다만 현행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에는 이를 따질 근거가 없다. 투자자교육재단 김일선 상무는 “내년 2월 시행되는 자본시장통합법에는 관련 규정이 들어갔다”며 “앞으로 판매사가 펀드를 팔 때는 지금보다 훨씬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경민·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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