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시신 참배, 北서 DJ에 요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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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씨 20년 구형
권력 무상…. 한때 ‘소통령’으로 통하던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7일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징역 20년에 추징금 29억6000만원과 몰수 121억4000만원을 구형받았다. 朴씨는 이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왼쪽 눈을 붕대로 가린 채 서울고등법원 법정에 출두했다. [김태성 기자]

검찰과 대북송금 특검은 17일 현대그룹에서 대북사업 청탁과 함께 150억원을 받고, 대북 불법송금에 개입한 혐의(뇌물.직권남용)로 기소된 박지원(朴智元)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한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징역 20년에 추징금 148억5200만원을 구형했다. 朴씨는 1심에서 이들 2개 혐의에 대해 징역 12년, SK와 금호그룹에서 모두 1억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 징역 2년6월 등 모두 14년6월을 선고받았었다.

검찰 구형에 앞서 朴씨는 변호인 반대신문을 통해 2000년 남북정상회담 과정 등에 대해 약 두 시간 동안 자세히 진술, 눈길을 끌었다.

대북송금 특검 측이 "이번 사건 재판과 무관하다"고 만류했지만 朴씨는 "역사의 진실을 밝히겠다"며 대북협상 비화를 공개했다.

朴씨는 "당시 외국인이 북한에 가면 김일성 시신을 참배하게 되는데 예비접촉 합의문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참배 여부가 명시되지 않았다"며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당초 예정보다 하루 늦어진 것은 북측이 회담 직전 金전대통령에게 김일성 주석 시신의 참배를 요청해 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朴씨에 따르면 북측의 강력한 시신 참배 요구와 남측의 반대 과정에서 金전대통령은 북한행을 강행, 성남공항에서 임동원 전 통일외교안보 특보를 통해 "북측이 평양에 와서 참배문제를 협상하자는 전문을 보내왔다"는 긴급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평양에 도착한 날까지 참배 문제가 해결이 안 돼 회담 첫날 밤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내가 밤 늦게 독대해 해결방안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朴씨는 "도저히 타협이 안 돼 '차라리 문화부 장관인 나와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이 金전대통령을 대신해 참배한 뒤 서울에 돌아가 사표를 내고 구속당하겠다'고 했더니 북측이 다음날 아침 '없던 일로 하자'고 해서 문제가 해결됐다"고 설명했다.

남북정상회담의 대가로 정부가 북측에 1억달러를 제공하기로 했다는 의혹과 관련, 朴씨는 "역사와 통일을 위해 진술을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또 朴씨는 "새 정부 인수위에서 'DJ 뒤에 숨지 말고 당당히 나서라'고 했을 때 심한 모멸감을 느껴 한때 북한산에서 자살하겠다고 생각하고 바위까지 정해 놓았었다"고 했다. "그러나 구치소로 면회 온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마음을 바꿨다"고 덧붙였다.

김현경 기자<goodjob@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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