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로산다>호기심의 商魂 베네통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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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세계적인 기업도 창업이나 수성(守成)기법을 살펴보면 의외로 단순한 아이디어에 의존한 경우가 많다.세계 최고의 패션브랜드로자리굳히고 있는.베네통'이 바로 그런 예다.
“옷가게 점원이던 14세때 원색을 좋아하는 누이가 당시로선 낯선.샛노란색'스웨터를 짜줬다.그걸 입고 출근했더니 친구들이 자꾸 산 것인지,만든 것인지 물으며 호기심을 보였다.세사람에게같은 질문을 받고 .호기심이 바로 시장이다'싶어 바로 옷가게를차려 독립했다.” 루치아노 베네통(61.사진)회장이 최근 한국을 방문했을때 밝힌 베네통그룹 창업 스토리다.
베네통 광고는 사회도덕.정치적으로 논란거리가 되는 장면만 담은 사진 캠페인이 전부다.사람들이 베네통이라는 이름을 까먹을 만할 즈음.광고로 말썽을 일으켜 주목받자'고 작정한 듯한 것들이다.올해초 한국에서도 선을 뵌.백마(白馬)와 흑 마(黑馬)의교미장면'이나.피도 닦지 않은 어린애를 등장시킨 광고'.유고 내전당시 죽어가는 병사의 피로 적신 군복'.영국여왕을 흑인으로조작한 사진'등이 그 예다.제품과 관련된 내용이라곤 한쪽 귀퉁이에 깨알처럼 적힌.색상(인종)의 통합체 베네통(United Colors of Benetton)'이란 문구뿐이다.
.이 제품을 구입하면 이런 무드를 맛볼 수 있다'는 메시지도없이 어떻게 광고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베네통회장의 생각은 다르다.
“사회적 이슈를 제기함으로써 브랜드에 관심이 쏠리도록만 하면소비자를 매장까지 끌어들이는데는 이미 성공한 것이다.개별제품 판촉이야 전세계 7천여 직영.라이선스 업체 매장의 쇼룸에 걸어두기만 해도 소비자가 직접 해줄테고.” 14세때부터 시장을 전전하며 세계적 대기업을 일으킨 베네통회장이지만 그에게서 잰체하는 근엄.화려함은 찾아볼 수 없다.돈이면 뭐든 가리지 않고 해치우는 수전노같은 느낌도 주지 않는다.흰 고수머리를 대충 빗어넘기고 철테 안경을 낀 수 더분한 외모나 조용조용하고 품격있는매너를 접하고 보면 오히려 점잖은 교수풍에 가깝다.스웨터 몇장더 팔겠다고 알몸 사진광고모델로 나섰던 사람으로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는.사업을 고상한 취미로 가꾼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어한다.“좋아하는 마케팅 여행을 못할 것같아 은퇴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할 정도다.1년의 절반을 자가용 비행기로 해외 마케팅하는데 보내고, 나머지 4분의1은 베네통본부로 사 용하고있는 트레비소타운내 17세기식 별장에서,그 나머지는 로마.밀라노등 이탈리아내 도시의 친구들을 만나 마케팅 감을 잡는데 보내고 있다.
그는 92년부터 2년간 이탈리아 상원의원을 지내는등 한때 정치에 관여했으나.사업과 정치를 철저히 분리한다'는 원칙을 갖고있다. 미얀마의 민주투사 아웅산 수지가 양곤 군사정권에 대한 경제봉쇄 동참을 요청했을 때“우리의 사업 동반자는 군사정권이 아니라 미얀마 안에 베네통 상품을 팔아주겠다는 민간업자다.시장있는 곳이면 당연히 베네통 점포가 들어가야 한다”며 거 절했다. 유고내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중에도 사라예보에 베네통 점포 문을 연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해외시장 개척을 서두르는 법은 없다.“그나라 생활수준과 우리 고객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신통찮으면 몇년 더 기다릴지언정 비현실적 장밋빛 예측을 믿고 추진하지는 않는다.오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면 되지 따로 전세버스를 구할 것 까지는 없지않은가.” 이는“국가경제가 잘 돌아가고 젊은이가 있는한 우리 브랜드가 들어갈 시장은 있다”는 베네통의 브랜드 파워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뒷받침된 것이다.

<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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