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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프리즘>흑인배우 덴젤 워싱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덴젤 워싱턴(42)은 흑인배우다.하지만 그는 할리우드의 몇 안되는.나이스 가이'(Nice Guy)다.그는.나이스 가이'의기본 덕목인 단란한 가정,두터운 신앙,성실함을 두루 갖췄다..나이스 가이'란 수식어를 달 수 있는 배우가 톰 행크스.톰 크루즈,예전의 케빈 코스트너(코스트너는 지난해 이혼했다)정도임을생각하면 그의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영화 속에담긴 그의 모습은 늘 지성적이고 정의로우며 진지하다.악당으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그래서 그는 인종을 뛰어넘어 사랑받는톱 스타의 인기를 누린다.지난 14일 베벌리힐스의 윌셔호텔에서만난 워싱턴의 인상은 매우 밝고 화면에서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는 것이었다.40대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맑은 분위기를 풍긴다.
영화 속에서 늘 듣던 착 가라앉은 목소리 대신 약간은 들떠있는 말투도 그런 인상에 일조했다.스크린에서 풀어내는 섬세한 내면연기에 익숙해있던 기자에게 잘 웃고,농담도 곧잘 하는 그의 모습은 어쩐지 낯설기까지 했다.
그가 새 영화.목사의 아내'(Preacher's Wife)를소개하면서 한 이야기는 더욱 의외였다.“고된 일상을 보낸 사람들이 극장에 오는 이유는 재미있는 영화를 보며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기 때문이다.나도 이젠 가벼운 오락영화의 일부가 되고 싶다.” 92년.말콤 X'로 스타덤에 올랐고,93년.필라델피아'에서 정의를 위해 싸운 변호사역을 진지하게 해냈으며,얼마전.커리지 언더 파이어'에서 보여준 고뇌하는 군인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그는.목사의 아내'에서 코믹연기를 처음 으로 시도했다.그가 맡은 역은 천사.정말 말 그대로 하늘에서 툭 떨어져 좌절에 빠진 목사(커트니 밴스)와 그의 아내(휘트니 휴스턴)를 도와주는 이야기다.그 과정에서 휴스턴과 로맨틱한 감정을갖게 되는 그가 휴스턴을 바라볼 때의 멍청 한 표정은 너무나 의외여서 더 웃긴다.“코미디영화를 하는게 굉장히 재미있었다.지금까지 해온 연기와 달라 어렵긴 했지만 다행히 코미디의 묘미를살릴 줄 아는 페니 마셜 감독이 잘 이끌어주었다.” .목사의 아내'는 47년 케리 그란트.데이비드 니븐이 주연한.목사의 아내'(Bishop's Wife)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이 아이디어를 처음 내 흑인사회의 이야기로 바꾼 사람이 바로 워싱턴이다. “원작에선 목사의 아내가 매우 순종적이고 별 역할을 하지못했지만 90년대 상황에 맞춰 성가대 단장으로 남편의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타입으로 바꾸었다”는 그는“나 자신이 목사의아들이기 때문에 교회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흑인사회에 익숙하다.
실제로 교회는 흑인사회의 근간이다”고 설명한다.
그는 영화 속에서처럼 기적을 겪은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배우로서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기적”이라고 답변했다.
가수이자 배우인 아내 폴레타 이야기가 나오자 “너무 바쁘기 때문에 가정의 일은 아내에게 완전히 일임한다.내가 아내에게 하는 말은 늘 두마디 뿐이다..Yes,dear(알았어)'와 .You are right(당신 말이 맞아)'라며 껄 껄 웃었다.
세 아이를 둔 그는 자신이 코믹연기를 하게 된데 대해“아버지가 된 경험이 날 느슨하게 만든 것같다”면서도“사실 이번 새 영화의 코믹한 캐릭터가 나의 실제 모습에 제일 가깝다.난 원래매우 재미있는 남자다”라고 강조한다.
그는.목사의 아내'를“단지 가벼운 크리스마스 영화를 만들고자했을 뿐”이라며 “그동안 너무 심각하고 무거운 드라마들을 많이해서 그냥 가볍게 신앙과 가족의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애써 밝은 이야기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노력한 그지만 그래도 아킬레스건은 있었다.최근.흑인영화'(Black Movie)들이성공을 거두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말이 나오자마자 정색을 하곤“흑인영화라는게 뭐냐.백인영화.흑인영 화가 따로 있다는 말이냐”라고 되묻는다.그는“사람들이 흑인영화란 말을 너무가볍게 쓰는 것같다”며 인종 문제는 문화 전반의 문제여서 그리간단치만은 않다고 못박는다.
인종문제가 나오자 그의 목소리 톤은 약간 높아졌다.그는“백인과 흑인은 벌써 숫자에서부터 불균형이 있다.나는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보기 위해 극장에 간다고 생각한다.주인공과 동일시하고 싶은 것이다.그러므로 자기와 다른 모습의 사람이 등장하면 팬터지에 빠지기 힘들어진다”면서“인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골치 아프다.현실에서 탈피하기 위해 찾아간 극장에서 싸우고,살인하고,복잡한 인종문제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인디펜던스 데이'가 인기를 모은 이유는 인종을 뛰 어넘어 세계인 모두가 외계인이란 공동의 적을 물리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이제 더이상.말콤 X'와 같은 흑인운동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 출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배우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내는 사람이라면 혁명가 역할은 한번 해봤으니 됐다는 것이다.
.목사의 아내'가 절망에 빠진 흑인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려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는“모든 흑인들이 절망에 빠졌다고 생각하면 안된다.흑인들의 부정적 인상은 매스 미디어가 만들어낸 것이다.영화에서 살인하고 훔치는 것은 흑인이 대다수 아닌가.내 어머니는 할렘 출신이다.나에겐 할렘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최고인 동네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는 자신이 영화의 오락성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얼마전 택시 운전사와 우연히 나눈 대화를 잊을 수 없다.그는 일상에서 탈출해 환상에 젖고자 극장에 가며 그래서 액션영화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다.” [로스앤젤레스=이남 기자] ◇덴젤워싱턴 약력 ▶54년 뉴욕주 마운트버넌 출생 ▶포드햄대에서 연극 전공 ▶아메리칸 컨서버토리 시어터에서 셰익스피어극 공연 ▶81년.카본 카피'로 영화 데뷔 ▶대표작=.라이선스 투 킬'(84년),.글로리'(89년.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모 베터 블루스'(90년),.말콤 X'(92년),.헛소동'(93년),.펠리컨 브리프'(93년),.필라델피아'(93년),.크림슨 타이드'(94년), .커리지 언더 파이어'(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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