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도>34.설치미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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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설치미술'은 90년대 한국미술의 지배적 현상이라고 할만큼 강세를 띠고 있다.사람 수는 전통적인 미술 장르인 회화와 조각작업을 하는 작가들에 비해 절대적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예술은 다수가 아닌 소수 엘리트에 의 해 새로운국면을 맞이하고 이끌어진다는 점에서 설치미술이 한국미술의 흐름을 주도해가고 있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1백주년이자 한국관 건립후 처음으로 이 비엔날레에 참가,특별상을 받고 올해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도.정신의 공간'이란 설치작업으로 호평받았던 전수천.리옹 비엔날레에 백남준과 함께 초대됐던 육근병과 김영진.여기에 지난 6월 로테르담에서 열린.
마니페스타 1'에 선정작가가 됐던 김수자.94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했던 조덕현.
최근 몇년 사이에 열린 주요 국제전에 참가했던 이들 작가들의 작품만 살펴봐도 설치미술이 현재의 한국미술을 대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90년대 초부터 일기 시작한 설치미술 붐은 95년 열린 광주 비엔날레로 일반인들에게까지 설치미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대단한 힘을 발휘했다.
사실 설치미술은 90년대에 갑자기 튀어나온 신종 미술개념은 아니다.한국에서의 설치미술 출발이 언제부터인지 아직 완전히 일치된 지점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이전부터 존재해온 것만은 분명하다.미술관 밖으로 뛰쳐나가 파격적인 한바탕 해프 닝을 벌였던60년대 후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가 하면 기존의 모더니즘을극복하려는 시도를 보였던 80년대 중반을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미술의 해 조직위원회 주최로 95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공간의 반란-한국의 입체.설치.퍼 포먼스 1967~1995전'은 한국 설치미술의 출발점을 67년으로 보고 이 때부터 30년이 채 못되는 한국 설치미술의 역사를 짚어본 전시였다.
전시를 기획했던 미술평론가 윤진섭씨는 지난 67년 중앙공보관에서 열린.청년작가연립전'을 한국 설치미술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청년작가연립전'은 이름대로 연립전이다.홍익대를 갓 졸업한 젊은 작가들이 모인.무동인'과.신전동인'.오리진'등 3개 그룹이 함께 마련한 전시로 여기서는 설치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작품들이 첫선을 보였다.강국진.정찬승.정강자등 4.1 9세대들이 주축이 된 이 전시는 설치적 경향과 함께 기하추상과 환경예술,해프닝같은 60년대 현대미술의 모든 경향을 포괄하는등 일정한 방향은 세우지 못했지만 한국현대미술의 전환점을 가져왔다고 평가받을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권위적인 국전에 반기를 들고 등장한 앵포르멜 운동에 이어 기성권위에의 도전을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말하면 70년대 백색의단색회화와 개념미술의 흐름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물론 이 가운데서도.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나.ST'등 미술형식에 대한다양한 실험에 치중했던 그룹들이 70년대초 활발하게 활동하면서한국 전위미술의 기초를 다지는 동시에 80년대식의 새로운 설치작업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70년대 주목할만한 설치작업중 하나는 75년 심문섭이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던.관계'와 이강소가 파리 비엔날레에 선보인.닭에 의한 상황설정'이라는 작품들이다.먹이통에 묶여진 닭을전시장 바닥에 두는 방식으로 닭의 생활을 현장에 도입한 이 작품은 이강소가 이미 73년에 발표한 작품.화랑내의 술집'과 맥을 같이한다.화랑을 아예 술집으로 개조해 관람객들이 실제로 술을 마시면서 즐길 수 있도록 한 이 작품은 삶 자체를 설치의 중요 요소로 본 독창성으로 주목받았 다.
80년대 설치미술은.겨울,대성리전'으로 시작한다.81년 시작한 이 그룹전은 한겨울 서울인근의 대성리를 무대로 펼쳐졌다.겨울이라는 작업에 열악한 계절과 대성리라는 장소는 일반인의 상식과는 반대로 젊은 작가들의 탈실내화(脫室內化) 욕 구에 유리하게 작용했다.일부 미술평론가들이 한국 설치미술의 출발점으로 보는 80년대 중반은 다시 말하면 85년에 만들어진.메타복스'와.난지도'라는 두 그룹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같은 시기에 태어나 새로운 미술이라는 같은 목적 으로 활동했던 이 두 그룹은 90년대식 설치미술의 한 유형을 제시했다.미술행위를 벽면이나 받침대에 묶어두는 장소성을 거부하면서 전통적 관점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안원찬과 오상길.홍승일.김찬동.하민수를 창립멤버로 시작한.메타복스'그룹과 박방영.신영성.윤명재.이상석.김홍년을 주축으로 김한영.하용석.조민이 함께 활동한.난지도'그룹 모두 80년대 탈모던,즉 모더니즘의 극복이라는 쟁점을 표면화했다 .하지만 이역시 오브제라는 형식을 끌어내는 단계에서 만족했을 뿐 어떤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는 실패함으로써 점차 설치미술의 중심권에서는 멀어져 갔다.결국 89년.메타복스'가 해체전을 갖는 것으로 80년대 그룹을 중심으로 한 미술운동은 막을 내렸다.
“우리는 우리의 작업실을 온통 형식의 실험실로 만들고 싶다”는 식의 과격한 작업을 했던.뮤지움'그룹도 한국 설치미술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다.이불과 최정화.홍성민.고낙범.명혜경.노경애.정승등 60년대에 태어난 일곱작가를 창립멤버로 87년 관훈미술관에서 첫 전시를 연 이 그룹은 4.19 세대의 실험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평가된다.기존 모더니즘을 죽어 있는 박물관으로 치부해 이를 패러디한 그룹명에서도 이들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하지만 90년대 설치미술은 작 가들이 특정 그룹과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이 특징이다..뮤지움'그룹 작가들도 지금은 어떤 단체보다 개인별로 활동하고 있다.
이불이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한국작가로는 처음으로 개인전 초대를 받고 홍성민이 시간예술(공간뿐 아니라 시간의 추이까지 작품에 도입한 작품)의 도입으로 참신성을 인정받는가 하면 최정화는 뉴욕에서 열린.아시아 현대미술전'을 비롯한 외국전시에 빠지지 않고 초청받는등 모두 작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다.설치미술 탄생이래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있는 이들 90년대 작가는 이전의 설치작가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내용면에서는 강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고 형식 면에서는 모든 매체를 동원하는 총체적 예술의 경향을 띤다는 것이다.기계장치든 비디오든 영화든 시각 뿐만 아니라 청각과 촉각등 모든 것이 허용되는 시대인 것이다.
한마디로 설치미술은 회화건 조각이건 표현의 벽에 부닥친 많은미술인들에게 새로운 탈출구로 수용되고 있다.또 이것이 관객에게도 호소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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