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인도의 정신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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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인도의 충격은 힌두교 성지인 갠지스강 풍경에서 시작된다.그래서인도인들은 갠지스강을 힌두교의 성지로 부른다.
갠지스가 던지는 충격을 찬찬히 음미하면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즉 특유의 사생관(死生觀)이 배어 있음을 알수 있다.신화속의 어머니강에 죽음을 흘려보내기 위해 산 자들은 주검을 강가로 가져와 장작불에 태운다.살 타는 냄새가 진동하 고 뱃속의 가스가 터지는.펑'소리가 나는가 하면,가난한 자의 주검은 장작이 모자라 재가 돼 뿌려지지 못하고 타다 남은 숯덩이로 강물에던져지기도 한다.
죽음이 흘러가는 바로 그 강물은 곧 성수(聖水)이기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아무 주저함없이 양치질하고 목욕을 하며 마시기도 한다. 이 모든 행위가 그저 자연스런 일상사다.화장(火葬)을 치르면서 곡(哭)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이같은 일들은 그들이 믿는 힌두교의 가르침이 있기에 가능하다.쉽게 말해 삶과 죽음과 같은 세속의 일이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만한 중요한 것들이 전혀 아니라는 가르침이다.
이런 철학의 기본 개념은 세가지다.업(業.카르마)과 윤회(輪廻.삼사라),그리고 해탈(解脫)이다.이는 곧 힌두교의 지류로 시작된 불교철학이기도 하다.
윤회란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뜻으로.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즉 죽음 역시 삶의일부라는 인식을 가능케한다.이를 믿으면 일단 죽음의 심각한 의미가 없어진다.
업이란 이같이 돌고 도는 삶과 죽음의 과정에서 개인이 좋은 일을 많이 하면 다음 생애(후세)에서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고,반대의 경우 미천한 존재로 태어난다는 인과응보.자업자득의 숙명론이다.이를 믿으면 아직 인도에 남아있는 고대 신분제인 카스트(caste)에 따라 천민으로 태어난 사람도 사회체제를 원망하기보다 이전의 삶(전생)에서 나쁜 일을 많이 한 자신을 탓하게 된다.
9억 인구의 30%가 길거리에서 태어나고,살다 죽어가는 절대빈곤도 이같은 숙명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윤회와 업의 개념만 믿어도 인도인들은 삶과 죽음에 얽매이지 않고 현세의 고달픔과 물질적 욕망을 어느 정도 초탈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궁극적인 삶의 목적,가장 중요한 힌두교의 개념은해탈이다.해탈이란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윤회의 고리를 벗어나는깨달음이다.불교에서 말하는 열반(涅槃)과 같은 개념으로 생로병사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뜻한다.
해탈이란.나'(我.아트만)와.우주의 초월적 존재로 어디에나 있는 또다른 나'(梵.브라흐만)가 곧 하나라는 것(梵我一如)을깨닫는 것이다.
이 세상이란 아트만이 업을 지고 살아야 하는 일시적인 무대와같으며,절대존재인 브라흐만의 일부인 환영(幻影)에 불과하다.해탈을 하면 이런 환영의 세계가 사라지고 진정한 마음의 평온을 얻게되니 찰나적인 세상살이에 얽매일 이유가 하나 도 없게된다.
이같은 인생관을 가질 경우 삶을 초탈하는 달관은 자연스런 태도가 되지않을 수 없다.중요한 것은 세속의 삶이 아니라 해탈에이르는 길,즉 경전을 읽고 수행.명상하는 것이다.
이들이 물질문명의 홍수속에 살고있는 우리와 전혀 다른 삶과 문화를 영위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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