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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옥진 여사 “누워서 마음속으로 춤춰 봤는디 다 생각 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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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교통사고로 병석에 눕기 전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는 공옥진 여사. [중앙포토]

그의 집 전화와 휴대전화로 여러 차례 전화를 했다. “어디 가고 없다” “담(다음)에 연락하라”라며 따돌리기 여러 차례. 통화가 이뤄져도 목소리가 아주 작아 알아 듣기 힘들었다. 그래서 지난달 31일 오전 전남 영광군 영광읍 향교 부근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우편함에는 ‘영광예술연수소’라고 씌어 있었다. 대문 너머로 집 벽에 ‘孔玉振’(공옥진)이라는 문패가 보였다.

연수소에 딸린 살림집의 문을 열자 작은 체구의 그가 누운 채 손을 살짝 들어 손님을 맞았다. 화려한 시절을 뒤로하고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77살의 노명인(老名人) 공옥진 여사.

“미안혀. 이렇게 누워서…(손님을 받아서).” 그리곤 “다음에 보자”라고 말했다.

방 윗목엔 연둣빛 사기 요강이 놓여 있었다. 전화기 앞엔 영광군청 문화예술계장의 이름과 휴대전화번호가 아주 크게 써 있는 것도 눈길을 끌었다. 영락없는 시골 할머니 방 안 모습이었다.

“교통사고 당해 가지고 2년간이나 병원에 있었어. 퇴원한 지 넉 달 됐어.”

천정만 보고 있더니 말문을 열었다. 요지는 이렇다. 2006년 봄 집 앞 도로에서 자가용 승용차에 치여 갈비뼈 등이 부러졌다. 그 얼마 전 대구에 간 게 마지막 공연이 되고 말았다. 노환이 겹쳐 영광 기독병원과 광주 원광대 한방병원 등에 살다시피 했다. 지난 여름 집에 돌아와 혼자 지내며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팔뚝을 내밀어 주기에 보니, 군데군데 혈관 주사를 맞아 시퍼런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빨리 나아 무대에 다시 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답이 없고 얼굴에도 표정이 없었다.

그러더니 “이렇게 누워 (마음 속으로 공연을) 해 봤는디, (오랫동안 공연을 안 했어도) 다 생각나”라고 속삭였다.

“심청이 열다섯 때부터 심봉사 눈 뜰 때까지 네 시간 걸려. 한 대목도 안 막히고 다 됐어.”

늙은 춤꾼, 병든 소리꾼은 다시 무대에 오를 날을 기다리며 단칸방 병석에서 간간이 관객 없이 홀로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얼굴에 생기가 돌고 웃음도 띠었다. 피부가 팽팽한 게 전성기 때보다 나아 보였다(1983년 한 대학교 초청 공연 때 맨 얼굴에 화장하는 모습을 본 적 있었다). 그만의 1인 창무극(唱舞劇)과 병신춤을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비록 예전만큼 신명과 해학과 회한은 못 느끼더라도.

그는 “틀니를 안 끼어서…” 라고 중얼거렸다. 자신이 말할 때마다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되묻곤 하자 ‘미안한 생각 반(半), 자존심 반 (半)’에서 하는 말 같았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발음이 또렷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1998년 9월 중풍을 맞은 탓이다. 1년간 투병 끝에 무대에 다시 섰으나 2000년 10월 또 쓰러졌다. 다시 일어섰지만 공연은 점차 뜸해졌고 교통사고를 당한 뒤 2년 반 동안 관객 앞에 서지 못했다.

“이쁜 얼굴, 사진 좀 찍자”라고 했더니 “담(다음)에 허게”라고 말하곤 고개를 벽 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취재를 마치고 일어서는 기자에게 “아무것도 대접 못 혀 어째”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소문대로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조영원(52) 영광군 문화예술담당은 “마음이 참 여린 분인데,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공씨는 어려운 사람들이 찾아와 하소연하면 가진 돈을 다 주면서 살았다. 잘 나가던 시절에는 그래도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이젠 자기 앞가림조차 힘든 형편이다.

거처는 영광군이 마련해 준 것이다. 전기·수도료 등 공공요금과 난방비 등도 보조를 받고 간병인도 지원받아 생활하고 있다. 그는 이름난 전통예술인이지만, 많은 사람의 생각과 달리 1인 창무극과 병신춤 모두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했다. ‘가치는 인정하지만, 공씨가 당대에 즉흥적으로 창조한 것들이고 마땅한 장르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때문에 전수자조차 제대로 못 길러, 맥이 끊길 위기에 놓여 있다.

그 가 치료 받았던 영광 기독병원의 유명수 원무과장은 “다리에 힘만 생기면 공연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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