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현대사 연구팀 러시아 비밀文書 입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북한은 1945년 8월 해방후부터 48년 정권이 수립될 때까지 3년간 2만3천명 이상을.정치범'으로 체포했으며 정권수립 직전 13개소의 노동수용소에 1만8천여명을 수감해 놓았던 것으로 드러났다.정치범들은 주로 국가적 반역행위.간첩 .반(反)민주주의 선동행위등의 죄목으로 체포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사실은 본사 통일문화연구소 현대사연구팀이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에서 단독 입수한.북한 정치.경제 3년간 사업총괄보고서'(A4용지 3백쪽분량)에서 밝혀졌다.이 보고서는 북한주재 소련군사령부 산하의 민정부(民政部.사령관 레 베데프 소장)가 작성한 비밀문서로 45년 8월부터 48년12월까지 3년간 북한의 정치.경제 변화와 소련이 수행한 역할을 상세하게 기록.
평가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46년 한햇동안 정치범죄로 8천9백26명,47년 6천7백89건.1만2천8백38명,48년(9월까지) 9백48건.2천72명이 체포돼 총 2만3천8백36명이 정치범으로처벌을 받았다.지역적으로는 38선이 맞닿아 있는 황해도와 중국국경을 접한 평안북도에서 정치범죄의 50% 이상이 발생했다.
47년 정치범이 급증했던 이유에 대해 이 보고서는 남쪽의 한국독립당.백의사(白衣社).서북청년단등 정당.사회단체들이 북쪽에.특수임무'를 띤 요인을 파견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남쪽의 우익 정당.단체들이 조직확대와 정보수집을 위해 많 은 조직원을북한지역으로 밀파했던 것이다.
이 보고서에는 해방 직후 북한의 교도소 및 노동수용소 실태도상세히 기록돼 있어 주목된다.이 문서에 따르면 48년 당시 북한에는 10개의 교도소와 13개의 노동수용소가 있었고 노동수용소 수감자 총수는 1만8천3백57명이었다.노동수 용소는 석탄광산지역에 위치했으며,수형자들은 주로 석탄채굴작업에 동원됐다.
이 보고서는 노동수용소가 조선에서 처음으로 생겨났으며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했다.“수용소 수감자 부양경비가 교도소보다 훨씬 더 저렴”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외에도 북한주둔 소련군은 군사령관 산하에 50명의 장교단으로 구성된 민정담당부사령관 직제(사령관 로마넨코소장)를 마련해북한지역을 통치했으며 이 기구가 47년 5월 민정부로 개편됐다는 사실이처음 밝혀졌다.이것은 소련민정부가 45 년에 창설됐다는 통설(通說)을 뒤엎는 것이다.
이 문서에 따르면 민정부는 13개국(局),78명의 적은 인원으로 구성됐지만 6명의 도(道)고문,9백71명으로 구성된 6개의 도경무(警務)사령부와 85개의 군(郡)경무사령부,45명으로구성된 3개소의 시(市)경무사령부를 통제하고 있 었기 때문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정창현 현대사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