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盧진영 6.29主體 다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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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란히 법정에 선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두 전직대통령 진영간에 느닷없는 6.29선언의 주체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지난 87년 盧민정당대통령후보가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발표했던 6.29선언은 全전대통령의 전적인 결단이었 다고 全씨 부인 이순자(李順子)씨가 회고록을 통해 18일 주장하자 盧씨측에서 즉각 반격에 나섰다.
盧씨의 연희동비서실은 각 언론사에 반박논평을 전달,“사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단편적.일방적 얘기”라고 주장했다.논평은 또“6.29선언은 그때 여야,종교지도자등 많은 원로들의 의견을받아들여 결심한 것”이라는 盧씨의 옥중반박까지 전달했다.6.29선언에 깊숙이 개입했던 자민련 박철언(朴哲彦.당시 안기부특보)의원도“직선제등 6.29선언문을 기안.준비한 것은 6월18일새벽 盧대표가 나를 만나자고 해 연희동자택에서 최종결심한 것”이라며“이틀뒤인 20일 뼈대를 잡 아 27일 문안이 최종완결됐다”고 주장.
朴의원은“두 전직대통령이 실제 나눈 얘기는 두사람만이 알겠지만 여당대표로서 손쉬운 간접선거의 기득권을 포기,직선제를 결심한 것만으로도 全전대통령 작품만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盧대표가 직선제에 소극적으로 비춰진 것은 6.
29선언 사흘전의 내부회의에서조차 盧대표와 자신이 여타 인사들에게 시치미를 떼며 극적 효과를 노린 보안때문이라는 얘기다.
반면 이순자씨는 집필중인 회고록 초안에서 시종 자신의 건의와全씨의 외로운 결단임을 강조했다.다음은 李씨의 회고록 요약.
“누가 뭐라 해도 6.29선언은 그분(全씨 지칭)통치의 꽃이다.6월10일 민정당 전당대회가 열렸다.그날부터 재야.학생세력의 가두시위가 시작됐다.그분의 대안은 의원내각제였는데 호헌(護憲)으로부터 후퇴했음에도 야당은 직선제 개헌만을 요 구했다.
그분께 매달렸다..여보,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환자가 기어코 먹지 않으려 한다면 소용없는 일 아닌가요.직선제엔 결함이 많아도 사람들은 그걸 원해요.당신이 무사히 임기를 끝내고,우리 가족이 이곳을 나갈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어요'.그 분은 약간 놀라는 표정이었다.
.어제 박영수 비서실장도 당신과 똑같은 말을 합디다.나라장래에 막중한 영향을 끼칠 일이니 사심없이 결정할 생각이오'.그러자 이번엔 이기지 못할까봐 내가 덜컥 겁이 났다.
그분의 대답..필생즉사(必生卽死)요,필사즉생(必死卽生)이오.
죽을 힘을 다하면 반드시 살 수 있는 것이오'.직선제를 하면 여당이 불리하다는 사람도 많지만 제도가 승리를 보장해주는 것은아니니까.어떤 상황에도 이길 수 있는 사람만이 승자요'.
그후 이틀동안 그분은 盧대표를 만나지 않았다.자신에게도,盧대표에게도 적어도 이틀 정도의 사유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같다. 사흘후인 6월17일 오전10시.그분은 집무실에서 盧대표와 마주앉았다.국민의 뜻이 직선제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분의 첫마디였다.盧대표는.직선제를 수락한다면 나는 대통령 후보를 사퇴하겠다'고 일언지하에 반대했다.
우여곡절끝에 6.29선언이 발표됐다.결국 그 선언은 한사람의새로운 영웅을 탄생시켰다.그분의 원대로 盧대표는 국내와 세계언론의 총아가 되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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