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오페라 카르멘…비제 음악, 조역 활약 빛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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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멘’제1막에서 돈 호세(테너 호세 쿠라)를 유혹해 탈출에 성공하는 카르멘(메조소프라노 엘레나 자렘바).

지난 15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막이 오른 야외 오페라 '카르멘'(19일까지). 역시 비제의 음악은 제대로만 연주하면 반드시 감동을 준다. 서울심포니를 지휘한 루카스 카리티스는 화려하고 경쾌한 음색에 드라마틱한 무게까지 실어 그랜드 오페라다운 풍모를 살려냈다. 평소 오페라 극장에서 모기소리 같은 노래만 듣다가 첨단 스피커로 증폭시킨 음악을 접하니 귀가 후련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호소력 짙은 음색과 진지함으로 무장한 소프라노 마야 다슈크는 미카엘라가 돈 호세.카르멘에 버금가는 음악적 비중을 지닌 배역임을 입증해 주었다. 주역을 비롯해 단카이로.프리스키타.메르세데스.주니가역 등 조역을 맡은 성악가들의 눈부신 활약은 대형 프로덕션이 선사하는 또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주역 못지않는 음악적 실력을 과시한 조역들 때문에 카르멘(메조소프라노 엘레나 자렘바)이나 돈 호세(테너 호세 쿠라)가 상대적으로 머쓱해진 느낌이었다. 목소리를 아끼는 듯 다소 가벼운 발성으로 일관하던 쿠라는 '꽃노래'에서 아낌없는 열창을 토해내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자렘바는 목소리가 너무 무거워 카르멘의 요염한 이미지를 충분히 살려내지 못했다. 연기도 공연장을 휘어잡을 정도에는 못미쳤다.

무대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처음에는 '대형 화면으로 DVD를 보기 위해 밤늦도록 운동장에 앉아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카메라로 찍어 스크린에 옮긴 영상은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했으나 객석에서 보기에는 평면적인 무대였다. 주역 가수의 모습을 클로즈업한 양쪽 화면 사이에 투사한 대형 그림의 시각적 효과도 한계가 있었다. 무대 양옆에 우뚝 선 조명 트러스가 거의 유일한 무대 구조물이었다. 조명.의상.소품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세미 스테이지 오페라'에 가까웠다.

그러나 무대 위 스탠드로 올린 오케스트라의 위치 선정은 효과적이었다. 1~2막에서 강렬한 조명을 사용해 먼 거리에서도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느낄 수 있도록 한 것도 좋았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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