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연속 대형 어음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광주의 1천억원대 딱지어음 사기사건에 이어 부산에서도 2천억원대 딱지어음 사기사건이 터졌다.
불난 집을 가려 도둑이 드는 것은 필유곡절(必有曲折)이다.어음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은 중소기업들이다.경쟁력 상실과 경기후퇴로 물건이 안팔리자,재고는 늘고 자금은 쪼들린다.때만 노리던 사기꾼들에게는 절호의 기회다.배고픈 고기가 낚시에 걸리듯 판매난.자금난.재고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은 경기가 좋았을 때 같으면 저지르지 않을 실수를 범한다.사기어음을 받고 물건을 내주고마는 것이다.
사기꾼을 잡아 처벌하는 것은 사직당국의 일이다.어음용지를 배포하는 것은 금융기관이고,이들에게 사업자등록증을 내주는 것은 세무서다.이 세 기관은 어음사기꾼의 준동을 막을 의무가 있다.
특히 금융기관은 금융결제제도의 편리를 악용함으로써 금융업을 교란시키는 어음사기꾼 무리에게서 자신의 영업을 보호하는 의미에서도 철저한 주의의 눈을 떼서는 안 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 창구직원이 사기어음의 유통에 오히려 촉진역할을 하는 사례마저 드물지 않다니 가공스런 일이다.
그러나 어음사기범죄의 더 무서운 내막은 역시 경제난(經濟難)이다.올 10월말까지 전국의 부도건수는 9천건을 넘어 하루 평균 37개사에 이르렀다.특히 이달 들어서는 부도건수가 급증하고있다.이것은 경기냉각을 견디고 살아남은 잎새가 마지막 겨울 바람에 우수수 한꺼번에 지는 현상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살릴 기업은 살려야 한다.금융기관은 자신의 고객 가운데 어려운 시기를 넘기면 회생할 수 있는 기업의 명단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생산성 향상.비용절감.품목 강화를 통해 스스로를도울 수 있는 기업을 끝까지 밀어주는 전략을 마 련해야 할 책무는 금융기관의 몫이다.이것이 중소기업도산을 막는 행동 프로그램이자 금융기관 자신도 살아 남을 수 있는 전략일 것이다.
어음사기를 막는 최선의 길은 믿을만한 기업에는 믿을만한 돈줄이 늘 있어주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