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칼럼>떠도는 脫北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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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한 농업과학원 연구원 이민복은 육종전문가다.북한 전지역을 돌아다니며 볍씨 연구를 했다.그의 결론은 북한농업의 실패는 품종개량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욕을 마비시키는 집단농장체제에있다고 판단했다.부분적으로 실시중인 개인.뙈기밭 '농사에서 증명되듯 개인영농화가 식량난 해결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다.그는 이런 내용의 보고서를 중앙당 1호편지로 보냈다.그러나 회답은.노'였다.수령만 믿고 충성했던 자신이 미워지면서 그는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월경(越境) 단 하루만에 중국경찰에 잡혀 북한수용소에 감금된다.손톱이 빠지고 쥐고기를 먹을 정도의 혹독한 감금생활에서 농업과학자라는 이유로 풀려난다.그는 재차 탈출을 시도한다.이번은 성공했다.1년 남짓 옌지.훈춘을 떠돌았지 만 서울행은 쉽지 않았다.그는 다시 쑤이펀허강을 헤엄쳐 러시아로 들어간다.모스크바 한국대사관까지 인도됐지만 망명은 받아들여지지않았다.그의 끈질긴 호소가 한 월간지에 소개되면서 그는 실로 첫 탈출 5년만에 그리던 서울땅으로 오게 된 다.
88년 북한을 탈출,중국-베트남-중국을 거쳐 천신만고끝에 귀순했던 김용화씨는 그저께“귀순자도 아니고 불법입국 조선족도 아닌 현재의 고통을 더이상 견디기 어려워 중국 추방이나 북한 송환도 달게 받을 마음의 준비가 돼있다”는 호소문을 정부에 냈다. 남한땅을 밟지 못해 떠돌고 있고,밟아봐도 정착이 쉽지 않다.지금 베이징과 러시아엔 이처럼 떠도는 탈북자들이 2천~3천명,중국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한 탈북자가 8백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을 어찌할 것인가.지금도 내 책상위에는 중국 칭 다오에서 보낸 한 탈북자의 눈물어린 망명 호소문이 있다.대사관은 정치적이유 때문에 못받아들인다고 하는데 정치적 이유로 탈출한 나같은사람은 어디서 살아야 합니까 하는 호소다.호소가 닿지 않으면 악이 받친다.이를 갈고 남한을 원망하 는 탈북자가 모스크바.옌지.베이징에 지금 넘쳐나고 있다.
이 뿐인가.중국교포3세 작가인 김재국은.한국은 없다'라는 조국체험기를 썼다.조국땅에 와서 온갖 학대와 서러움을 겪은 조선족 연수생들 중엔“만약 전쟁이 다시 한번 더 난다면 난 총을 들고 선참으로 한국으로 달려와 한국놈들을 쏴버리 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것이다.이대로 나가다간 떠도는 탈북자들과 중국 조선족으로 뭉친 또하나의 적대적 반한(反韓)단체가 생겨나지 말라는법이 없다.
모든 탈북자를 받아들일만큼 정부예산이 넉넉지 않은 것도 잘 안다.탈북자 모두를 받아들여 북한을 비우는 방향의 대북(對北)정책은 안된다는 원칙도 옳다.중국.러시아와의 외교적 마찰도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그렇다면 어쩔 것인가.속수무책 으로 방치만할 것인가.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독일의 경우 구 서독정부는 50년 동독난민긴급수용법을 제정했고,53년 헌법재판소는.거주이전의자유는 동독 피난민에게도 적용된다'고 판시했다.그후 수백만명의난민을 수용했고,장벽 붕괴 직전인 90년 24 만명의 동독 난민을 받아들였다.난민은 먼저 국경 부근의 베를린과 기센의 긴급수용소에 2~3일 수용된다.자신의 희망에 따라 16개 주 수용소로 분산돼 정식 주택이 제공될 때까지 2~3년을 기다린다.이기간중 자녀학자지원금.사회진출을 위한 보조금.의료보험 등 복지혜택이 제공된다.정부는 예산을 지원하고 정착 프로그램은 카리타스같은 종교단체가 실시한다.강요하지 않는 교육을 통해 주민과의자연스런 파트너십을 유도한다.
중국 조선족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의 일부인 탈북자를 더이상 냉대하고 나몰라라 할 수는 없다.정부는 우선 이들을 수용할 난민수용소를 지역별로 분산해 세우고 이들이 정착할 때까지 밀어줄예산을 세워야 한다.탈북자를 데려오는 일을 정부 가 앞장서 할수는 없다.종교.사회단체가 나서서 이들을 도와야 한다.유엔난민보호기구와 공조할 수도 있다.중국 조선족 문제를 한 민간단체 모임이 추진했듯 유사한 방식을 취하면 길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지금 최씨 일가의 집단탈북에 대해 모두가 경탄과 축하를 보내고 있다.어찌 최씨네 일가 뿐이겠는가.“통일은 눈앞인데 조국땅 남쪽에 오기는 왜 이리 힘든가”하는 이민복씨의 절규가 더이상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정부와 종교.사회단체가 함께 나서서 이들을 도와야 한다.
(논설위원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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