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임시수용'이 고작-정부 脫北者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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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의 탈북자대책은 제대로 돼 있는가.김경호(金慶鎬)씨 일가의 탈북을 계기로 .대거 탈북사태 발생'관측이 나오면서 새삼 정부의 대비태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일 열린 통일관계장관 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논의됐다.
90년대 들어 북한정세가 불안정.불투명해짐에 따라 정부는 몇 가지 방안을 강구해 왔다.하나는 .통일과정 관리방안(통합대비계획)'이고 다른 하나는 .급변사태 대비계획'이다.
이중 대량 탈북사태와 이에 수반할 북한정정(政情)의 혼란을 상정하고 있는 것은 후자(後者)로 안기부가 입법을 목표로 아직껏 다듬는 중이다.이 계획은 구체적으로 독일통일.루마니아 사태.중국 천안문사태등 세 가지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통일원은 통일이 됐을 때를 대비한 업무집행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2년전부터 .통일대비 요원(기획담당)'20명을 선발해 사회주의권 국가에 파견하고 내년부터 .통일대비 직무요원'7백명을 선발하는 계획등이 그같은 방안의 하나다.
그러나 정부의 각종 정책.방침에 많은 문제점이 내포돼 있다는지적이 정부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안기부장등 안보관계자들은 국회보고등에서 여러 차례 “북한이 붕괴할지 모른다”고 밝혀 왔다. 하지만 말로만 심각하다고 했을 뿐 실제 준비된 대책은 아주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대량 탈북자 발생과 관련된정부의 대비는 초.중학교 시설을 임시 수용시설로 하고 대형천막등을 준비한다는 수준이다.또 중앙정부가 난민들을 일 단 임시수용한 뒤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고,지방자치단체는 적십자사나 종교단체등과 협의한다는 계획 정도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 대량 탈북사태가 진전될 경우 예상되는 북한지역 치안유지.개발.세제(稅制).월남자들의 재산권문제등에 대해서는 논의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북한주민 탈출이 94년부터 눈에 띄게증가했는데도 이렇다 할 마스터 플랜이 마련돼 있 지 않다.
통일대비요원 파견이나 교육도 마찬가지다.
.통일대비요원'을 어떤 기준으로 선발하고,이들에게 어떤 대우를 해준다는 등 구체적 계획은 밝히지 않고 .몇 명을 뽑아 통일대비에 필요한 교육을 시킨다'는 식이다.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이정부내에서 제기되는 게 괜한 게 아니다.
한 당국자는 “통일원이 주관하고 있는 통합대비계획 마련을 위해 각 부처가 안(案)이라고 낸 내용을 보면 거의 .메모'수준”이라고 개탄한다.대통합에 대한 안을 내라고 하니까 마지못해 시늉만 내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는 것이다.일각에 서는 언제,어떻게 있을지 모를 문제를 두고 안을 내라면 어떡하냐고 .투정'하는 경우도 있다는 전언이다.
한 안보관계자는 사태전개에 대한 타당성 있는 예측과 상황을 정확히 상정하지도 않은 채 형식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다며 무원칙을 걱정하고 있다.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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