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시장 주식, 값은 싸졌지만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9면

지난달 세계 증시가 폭락하면서 신흥국 증시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연초 대비 70% 가까이 하락한 것을 비롯해 상당수 신흥국 증시가 반 토막 났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신흥시장 전체의 12개월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6.8배 수준까지 떨어졌다. 신흥시장의 PER은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9배, 2002년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지는 과정엔 8배를 기록한 바 있다. 현재 상황이 과거의 위기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신흥국 증시 주식은 정말 쌀까? 이 질문에 투자자들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더 내릴 요인이 있을 수 있다는 의구심이 떠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가 국가부도 위험이 본격적으로 주가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정보기술(IT) 거품 붕괴 사태 이후 증시에서 국가위험(컨트리 리스크)은 별 고려 대상이 안 됐다. 외환위기에 덴 신흥국도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최근 국제 금융시장이 얼어붙자 국가부도 위험이 다시 높아졌다. 아이슬란드를 포함해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린 신흥국이 늘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 윤항진 연구원은 “경상수지 적자를 외국인 투자로 메우면서 외환보유액을 축적한 나라의 안정성은 실제보다 과대평가됐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투자가 빠져나가면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인도와 러시아·말레이시아·브라질이 대표적이다. 이와 달리 중국은 외환보유액도 많을뿐더러 자본 통제로 외국인 투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신흥국과 똑같이 봐서는 안 된다는 평가도 있다.

갑자기 부각된 국가 위험은 각국 증시의 적정 주가 수준을 다시 평가하게 만들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신흥국 증시의 적정 PER은 연초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주가가 내려 싸보이기는 하지만 기초체력에 비해 싼 건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실물경제 침체로 기업 이익이 앞으로 급속히 줄 가능성도 크다.

윤 연구원은 “시장의 실제 PER이 적정 PER보다 높은 인도·대만·말레이시아는 앞으로도 추가 하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최현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