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서구적 勞使관행 한국엔 이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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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클린턴 미 대통령이 복수노조와 제3자 개입을 금지하는 한국 노사관행을 국제노동기구(IL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규범에 맞도록 개정할 것을 촉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먼저 클린턴 대통령이 한국의 노사관행을 ILO와 OECD 규범에 맞춰 바꾸도록 촉구한 것은 곧 서구사회 노사관행에 무조건따라오라고 말한 것과 같다.자동차기술을 서양에서 배운 것과 같이 노사관행도 서양에서 배워야 한다는 논리다.그 러나 노사관행은 자동차기술과 같이 생산공장에서 개발된 것이 아니라 사회와 함께 형성된 것이다.
서양의 노사관계 관행은 공업화 속에서 역사적으로 발달해온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노사관행도 한국을 공업화시키고 있는 사회 속에서 단계적으로 발달해야 서양의 노사관행에 따라가는 것이 된다.이것은 서양의 노사관행을 주축으로 하는 ILO 나 OECD의 규범을 한국에 강요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제공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양의 노사관행을 한국사회에 이식하는 문제는 노사관행을 형성하고 수용하는 노동시장구조 속에서 답을 구해야 한다.
서양의 노사관행은 기업 외부에서 발달한 사회적 노동시장 속에서 형성됐다.
사회적 노동시장에서 노동계층이 중심이 돼 노동운동이 전개된 관계로.제3자 개입'문제가 일어날 여지가 없었으며 개별기업 밖에서 노조가 조직되기 때문에.복수노조'개념 자체가 없다.
그러므로 클린턴 대통령이 한국에 촉구했다는 제3자 개입 문제나 복수노조는 서양의 노사관행에 없는 개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공업화 이전에 사회적 노동시장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운동이 기업의 내부 노동시장 중심으로 전개됐다. 노조는 기업내부에서 종업원 사이에 조직되고 노사분규는종업원이 사장을 상대로 하는 사내문제의 성격을 띠고 나타났다.
이때문에 종업원 신분을 갖지 않은.제3자'가 종업원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입장이 나왔으며,노조 분열이 종업원 분열로 연결되므로 복수노조를 기피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한국의 내부 노동시장 구조에 서양의 외부 노동시장 관행을 이식하려는 주장은 곧 한국에 계층대립적 노동운동을 촉구하는 것과 같다.
클린턴이 ILO나 OECD 관행을 한국에 촉구했다는 것은 우리 노동시장구조를 모르는데서 온 결과일 것이다.노동시장 구조를무시하고 노사관행 자체만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종업원으로구성된 노조에 종업원 아닌 사람이 끼어드는 것 은 자연스럽지 않으며 종업원이 사분오열돼 서로 헐뜯는 현상을 피하려는 것은 누가 봐도 온당한 판단이다.
김영환 명지전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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