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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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누에고치는 울기 시작했다.하얀 껍질이 들먹거렸다.
“오,스위티! 울지 말아요.” 갈색머리 여인이 아내를 달래며벗은 채로 맥 앞에 섰다.행여 아내에게 폭력이라도 휘두를까 막으려는 자세였다.
늘씬한 두 다리 갈피에 갈색 체모(體毛)가 무성했다.맥은 눈둘 바를 모르고 장승처럼 서있기만 했다.사실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방도를 찾지 못했다.
스위티.
여인은 아내를 이렇게 불렀다..달콤함'을 뜻하는 그 애칭이 둘의 살뜰한 애정관계를 짐작케 했다.어쩌다 이런 경우를 겪어야하는지 비참했다.
당장 뛰쳐나오고 싶었으나.현장'을 지켜야겠다는 직업의식이 발을 묶었다.이혼조건으로 안성맞춤의 현장이 아닌가.
그 현실적인 계산을 맥의 표정에서 읽었는지 여인은 경멸에 찬웃음을 띠며 천천히 옷을 입기 시작했다.
팬티를 입고 양말을 신고 블루진 바지를 껴입었다.봉곳한 젖가슴에다 터틀 스웨터를 막바로 씌웠다.노브라다.
“미스터 우..법의 정신'만 읽지 말고.향연'도 좀 읽어요.
플라톤의 오묘한 철학을 터득하게 될 겁니다.” .법의 정신'은프랑스의 법률가 몽테스키외의 저작이요,.향연'은 고대 그리스의철학자 플라톤에 의해 쓰여진 고전이다.
차가운 법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변호사 주제에 어찌 에로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빈정거림일 것이다.
플라톤은 동성애자(同性愛者)로 알려져 있다.
소크라테스도 동성애자였다지만 내용이야 어떻든 그에겐 크산티페라는 아내가 있었다.악처(惡妻)의 대표로 손꼽혀 온 여인이었으나 그녀가 악처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소크라테스의 어중간한.양수겸장'에 있었다고 보는 이도 적지 않다.
이에 비기면 플라톤은 이성(異性)에 대해 성적(性的) 관심을전혀 갖지 않는.진성(眞性) 동성애자'였다.
갈색머리 여인의 빈정거림대로 맥은 플라톤의 철학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동성애는.영혼의 아이',즉 철학을 낳고,이성애는.육체의 아이'를 낳는다는.향연'의 동성애 정당화론을 수긍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철학사상(哲學史上) 최고의 고전 이 동성애자에 의해 저술되었다는 사실도 불가사의했다.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남성 동성애자 중엔.무능한 아버지와 억척스럽고 남편을 불만스러워하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아들,특히그 어머니로부터 지나치게 사랑받고 자란 막내'가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성의 동성애자는 어째서 생기는가.군화처럼 목이 긴구두의 끈을 침대에 걸터앉아 매고 있는 갈색머리 여인을 보며 생각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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