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이자율 2.5%에 日 예금자들 화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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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도쿄=이철호 특파원]도쿄(東京)의 오래된 주택가 야요이초(彌生町)의 토박이 무라타 세이이치(村田誠一.65)는 최근 고민끝에 결단을 내렸다.집 부근 은행에 묻어두었던 퇴직금 4천만엔가운데 절반을 빼내 시티은행 도쿄지점을 찾아간 것 이다.“아무것이나 이자율 높은 쪽에 해주세요.”그는 일단 1년짜리 뉴질랜드 달러표시 정기예금(연금리 6.6%)에 들었다.무라타가 집 부근 은행에 정기예금 통장을 개설한 것은 중.일(中.日)전쟁이터진 1937년,유치원 다닐 때였다 .그가 지금까지 통장에서 목돈을 찾은 것은 결혼 때와 집을 고쳐지었을 때,그리고 자식들의 결혼 때뿐이었다.그러나 그는 지난 1년동안 단단히 화가 났다.“아무리 그래도 연2.5%가 뭐람.이자로 먹고 살 수도 없잖아….한동안 오르던 엔 화 가치마저 떨어지면서 그는 더이상 일본 은행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일본 예금자들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그동안 일본은 은행들이 .앉아서 장사한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금융기관의 천국이었다.
일본사람들은 금리가 내린다고 쉽게 채권이나 주식으로 돈을 옮겨다니지 않았다.오히려 이자가 떨어지면“이자소득을 벌충하려면 더 많이 저축해야 한다”는 논리로 대응했다.일본은행은“예금자들이 경제법칙과 정반대로 움직였다”며“이자율 변화에 도 불구하고지난 40년간 일본 민간저축고가 줄어든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말했다.구미(歐美)경제학자들은“사회보장제도가 발달되지 않은 일본은 노후보장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므로 독특한 저축성향을 보인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어쨌든 거대한 민간저축고를 바탕으로 일본 경제는 발전했다.일본 경제기획청은“일본경기가 최근 서서히 회복된 데도 일본의 개인금융자산 1천2백조엔이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상황은 달라졌다.중앙은행 재할인율 0.5%라는 초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일본 예금자들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경기회복과 불량채권 해결에 따른 금융기관의 부담을 예금자와 연금생활자에게 모두 떠넘긴다는 것이다.
“올해 일본 금융계 최대의 지각변동은 금융개혁이 아니라 포트폴리오(자산을 배분해 다양한 유가증권에 투자하는 기법)가 다양하게 변했다는 것이다.”노무라(野村)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부동산.채권.주식에 이어 외국채권과 외화예금이 일본국 민의 주요한 포트폴리오 수단으로 등장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도쿄 외국은행의 외화예금 잔액은 지난해 7월 3조6천억엔에서 1년만에 4조8천억엔으로 30%이상 늘어났다.최근에는외국채권 쪽으로 거대한 자산이 이동하고 있다.9월 한달동안 1조4천6백억엔어치의 외채를 매입한 대신 8천2백 억엔어치를 팔아 외채쪽에 도피한 개인 자금이 6천4백억엔에 달했다.외국계 은행들의 예금유치 경쟁도 과열되고 있다.수수료를 제할 경우 일본보다 실질금리가 2~3% 높지만 최근에는.금리 1.5% 더 얹어주기 캠페인'이 한창이다.
“일본 금융기관의 성격을 기업에 대한 자금줄 역할에서 앞으로는 개인자산의 효율적인 활용쪽으로 바꾸겠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일본총리는 최근 금융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선언했다.예금자들의 반란에 사정이 그만큼 다급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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