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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아버지, 누구인가?…가난한 농사꾼에서 거제도 갑부까지 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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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김대중 대통령의 아버지 김운식 씨는 일제 강점기 전남 하의도에서 이장(里長)을 지낸 지식인으로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는 하의도에서 멀리 배를 타고 목포·광주·서울을 자주 오가며 소작쟁의운동을 주도했고,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과 정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버지는 조선시대부터 저항의 섬으로 통했던 하의도의 민심을 주도하는 동네 리더였던 것이다.

어린 김대중은 그런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정치감각을 익혔고, 이장이기 때문에 무료로 배달되는 일간신문을 볼 수 있었다. 자서전에 따르면 김대중은 여덟 살 때부터 일간지의 1면 정치면을 즐겨 읽으며 사회를 보는 폭넓은 시각을 습득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일제하에서 의도적으로 일본어를 배우지 않을 정도로 항일 의식과 애국심이 강했던 아버지는 어린 김대중에게 역사의식을 불어 넣어주었다.

당시로서는 불온문서에 해당하는 조선 왕조의 계통도(系統圖)를 집안에 숨겨두고 종종 아들을 불러 그것을 펼쳐 설명해주는가 하면, 우리 역사의 우수성을 가르쳐 주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훗날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유감없이 보여준 강인한 저항정신과 민족주의적 진보 노선은 이처럼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적으로 저항의식이 강했던 하의도와 그곳에서 소작쟁의를 주도했던 아버지로 인해 김대중은 환경적·가정적으로 진보적 여건 속에서 성장한 셈이다. 분석심리학자 칼 융(C. Jung)에 따르면 조상들의 관습이나 문화·의식, 심지어 신화조차 후손들에게 부지불식간에 유전된다. 예컨대 미국인·중국인·일본인의 국민성이 저마다 다르고, 경상도와 호남의 역사적 환경이 다르듯, 하의도는 조선시대의 유형지-동학운동-일제하 소작쟁의를 거치며 저항의식이 대대로 이어졌고, 그 환경 속에서 김대중은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아버지 김운식 씨는 정치성향 못지않게 낭만적 기질도 있었다. 특히 음악에 소질이 많아 <쑥대머리>를 즐겨 불렀고, 1930년께 당시로서는 매우 귀했던 축음기를 섬에서 맨 먼저 구입했을 정도다. 만약 그가 소리공부를 제대로 했더라면 판소리 명창이 되고도 남을 만큼 노래솜씨가 뛰어났다고 김대중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회고한다.

김 대통령은 노래를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판소리를 유난히 좋아한다. 김 대통령은 아버지로부터 정치성향과 역사의식을, 어머니로부터 사업가 기질을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 장수금 씨는 장사 수완이 좋아 집안 살림을 꾸려갔는데, 김 대통령도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는 사업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결국 김 대통령이 군사정권의 모진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화투쟁을 주도하고, 한때 ‘빨갱이’로 몰리면서도 진보 노선을 견지하며, 대통령이 된 뒤에도 햇볕정책 등 개혁정책을 추진한 힘의 원천은 저항의식이 강한 진보적 지식인이었던 아버지였다.

글■최 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cj02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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