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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를움직이는사람들>39.한글라스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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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우리 일상생활에 유리만큼 친숙한 물건도 흔치 않다.한글라스(HANGLAS)그룹은 이 유리를 만드는 기업이다.8개 계열사가모두 유리제조.판매 일색이다.지난 57년 창업한 한글라스는 불혹(不惑)이 다된 지금까지 한 우물만을 파왔다.
유리업계에선 국내 최대이자 세계 10대 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글라스는 경영 또한 유리알만큼 투명하다.국내에선 매우 드문 세 집안의 동업 그룹으로 창업세대는 물론 2세체제로 넘어온지금도 팀워크를 자랑하고 있다.“동업하면 깨진다”는 속설을 무색케하는 것이다.
그룹 모체인 한국유리는 유엔한국재건단(UNKRA)이 전후 복구사업의 일환으로 3대 기간산업인 시멘트.비료.유리사업을 민간에 불하키로 하자 최태섭(崔泰涉.86).이봉수(李奉守.79).
김치복(金致福.79년 작고)회장이 손잡고 인천에 짓고 있던 유리공장을 낙찰받은 것이 모체가 됐다.당시 崔회장은 원양어업,李회장은 모방업체,金회장은 보험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들 3명의 창업 동지는 모두 평안북도가 고향이고,독실한 기독교신자(장로)라는 끈끈한 인연을 갖고 있다.이북에서 자수성가한 뒤 공산당의 종교박해를 피해 맨손으로 월남해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기업인이란 하느님이 잠시 맡겨놓은 것을 관리만 할 뿐이다.
” 최태섭회장의 청지기론(論)이다.그는 외제차를 타거나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다.이봉수회장도 근검을 일생에 실천으로 옮긴원로 기업인이다.
한글라스가 흔들림 없이 유리 외길을 걷고,동업자끼리 화합경영을 할 수 있었던 독특한 기업문화의 밑바닥에는 이같은 창업주들의 신앙에 바탕을 둔 청부(淸富)의 정신이 배어 있다.
한국유리는 지난 3월 창립 39주년을 계기로 주력상표명인.한글라스'를 새 그룹명으로 삼아 그룹체제로 공식 출범했다.이때 최태섭 그룹명예회장.이봉수 그룹회장및 최영증 그룹부회장(58.
崔명예회장의 장남)과 이세훈 그룹총괄사장(48.李 회장의 차남)등 4명으로 .그룹운영위원회'를 신설했다.또 고(故)김치복회장의 차남인 김성만 한국유리 부사장(49)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지난 82년 최태섭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고 장남인 최영증씨가 한국유리 사장이 되면서 시작됐던 2세 승계가 14년만에사실상 마무리된 것.
최태섭명예회장은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이중 장남인 영증씨와차남인 영철(52.한국전기초자 사장)씨가 그룹 경영에 참여하고있다.3남은 미국에서 무역업을 하고 있다.
이봉수회장도 세명의 아들 가운데 장남은 별도 회사를 운영중이며,차남 세훈씨와 3남 세헌(44.한국전기초자 수석부사장)씨등2명이 그룹 일을 맡고 있다.고 김치복회장의 두 아들중 장남은미국에 살고 있고 차남인 성만씨만 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김치복회장 생전엔 매주 수요일 창업주 세명이 모여 그룹의 대.소사를 결정해 그룹에선 이 날을 .슈퍼 웬즈데이'로 불러왔다.지금도 최태섭.이봉수회장이 매주 한차례씩 만나고는 있으나 실무적인 경영엔 거의 간여하지 않고 있다.한달에 두 번 열리는 그룹운영위원회등을 통해 2세들에게 경영의 큰 방향을 제시해주는정도다. 최근 2~3년 사이 전문경영인들도 창업1세대는 대부분퇴진하고 68년 도입한 공채 출신이 계열사 사장에 대거 등용됐다. 최영증부회장과 이세훈.김성만사장등 세명의 오너2세를 주축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진 것이다.崔부회장은 대외적으로 그룹을 대표하고,李사장은 그룹내 살림을 총괄하며,金사장은 주력사인 한국유리를 맡는등 역할 분담도 돼있다.이들 세명은 모두 경기고 선.후배다.
최태섭명예회장은 이력서가 A4용지 4장을 빽빽이 채울 만큼 많은 사회활동을 해온 한국 재계의 대표적인 원로기업인.전국경제인연합회 고문등 현직함만 30개에 이른다.6년전 직접 설립한 기아(饑餓)대책기구의 명예회장을 비롯,이들 직함은 대부분 사회봉사관련 단체들.이름만 걸어놓은 것이 아니라 실제 활동하고 있다. 이봉수회장은 한국유리의 동업에 참여하기 전부터 신일기업을별도로 운영해왔고 한국산업가스를 관련업계 최대업체로 일궈냈다.
요즘엔 신일학원등 교육.문화쪽의 사회봉사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할애하고 있다.
최영증부회장은 미국 유학을 마친뒤 68년 입사해 30년 가까이 경영수업을 받았다.82년 사장에,지난해에는 그룹 부회장에 올랐다.崔부회장의 동생인 최영철사장도 76년 입사해 20년간 그룹 경영을 익혔다.
이세훈 사장은 경기고 졸업후 곧바로 도미(渡美),대학에선 섬유화학을 공부한뒤 세계최고의 비즈니스 스쿨인 워턴경영대학원에서재정학을 전공한 수재.그는 미국에서 은행에 취직했다가 77년 한국유리에 경리담당 이사로 합류했다.기획상무.영 업전무.부사장등을 차례로 거쳐 95년 사장이 됐고 올 봄 그룹체제로 바뀌며그룹총괄사장을 맡게됐다.
한글라스는 올해 공채1기들이 처음 사장단에 진입해 공채시대를열었다.유유길 한국안전유리 사장,권오용 대원안전유리 사장,곽명길 한국베트로텍스 부사장이 그들이다.
***올 공채1기 사장단진입 지난해 한글라스의 그룹 유리공업의 산증인으로 94년 미국 유리공업협회가 주는 피닉스상을 동양인으론 처음 수상하기도 했다.
오완건 대원안전유리 회장도 57년 창립멤버.그는 특히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맡는등 체육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축구와 관련된 해외활동을 하며 70년대 중동전쟁 당시 유가상승 기미를그룹에 긴급타전해 사전 대비토록한 일화를 남겼다 .
지난해 한글라스의 그룹 매출은 약 8천억원으로 재계 45위(자산기준).건축용 판유리업계의 대표주자일 뿐만 아니라 국내 자동차 유리의 55%를 공급하고 있다.전자레인지 안에 들어가는 내화(耐火)유리는 전세계 시장의 55%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중국에서 저가품이 대량 수입되고,건설등수요업종 경기도 침체되자 경영합리화에 나서 명예퇴직등을 통해 한국유리 직원수를 5년새 3천명에서 1천6백명으로 줄였다.
한글라스는 전 사업부문을 건축.자동차.가전용품등 3대분야로 재편해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자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고화질TV용 유리벌브.유리장섬유등 첨단 고부가가치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해외진출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중국엔 이미 진출해있고 베트남.인도.폴란드 등지로의 진출도 추진중이다.창업주 3명이 모두 이북출신으로 북한에 공장을 설립하는 것도 이 그룹의 꿈가운데 하나다.

<민병관 기자><다음은 조선맥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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