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12년만에 개인전 갖는 오승윤화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서양화가 오승윤(吳承潤.58).한국 서양화의 개척자 오지호(吳之湖)화백의 둘째아들.국전 추천.초대작가.전남대 예술대교수 재직.지난 7월 몬테카를로 국제현대미술전람회에서 모나코특별상 수상. 초기 토속적 색채의 인물화를 거쳐 주로 산천의 아름다움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온 그가 원점에서 다시 출발한 듯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삶의 근원을 찾아 추상에 가까운 영역까지 온 것.화단에서는 대단한 변신이라고들 한다.
『아버님이나 형(오승우화백)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별화하고 싶었습니다.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계기는 인간과 자연의 근원을 찾아 보자는 것이었지요.』 국내에서는 12년만에 오는 20일부터12월3일까지 서울 선화랑(02-734-0458)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회에는 이전작품과 전혀 다른 이미지의 『풍수』시리즈 30여점이 선보인다.『「풍수」를 영어로는 그저 「윈드 앤드 워터」라고 번역했지만 생성의 근원이 바로 풍수입니다.삼라만상의 오묘한 조화와 평화로운 공존,생명의 소중함같은 것을 표현해내는데는 우리 전통의 색깔이 제격이지요.』 그래서 그는 흑.백.청.황.적의 오방색을 이용,대상을 축약시키고 도식화 해 비대상적인 동화의 세계를 그려 냈다.하늘과 들판,산과 구름,물고기와 나무,꽃과 여인,사슴과 초가집….이들이 평면화된 화면 위에서 현란한 색채의 하모니로 빚 어내는 노래는 『환희의 송가』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그의 변신은 프랑스 입체파 화가 쿠프카의 변모와 비교되기도 하고 고갱의 종합주의나 현대회화의 전면회화(all over painting)에 선이 닿아 있다는 평도 듣는다.
그의 이러한 변신은 물론 자신이 결정한 것이다.그러나 그 뒤엔 보이지 않는 조언자가 있었다.바로 선친인 오지호화백이다.
『요즘도 중요한 결정을 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아버님과 상의합니다.아버님 사진을 앞에 놓고 한참 얘기하다 보면 아버님께서 넌지시 답을 일러주시곤 합니다.같은 분야에서 아버님을 능가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방향을 바꿨습니다 .』 그는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선친이 기거하던 무등산 아래 초가집에 살고 있다.집이 오래돼서가 아니라 단지 「오지호화백이 살던 집」이라는 이유로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이 초가집을 그가 떠나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아버지와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서다.
『화가 한명 나오면 집안이 망한다던 시절이 있었는데 저희 집안은 3대째 화업을 이어오고 있으니 좀 별나지요.』「별나다」는그의 말은 아주 겸손하게 표현한 말이다.큰딸 수경씨가 미대를 졸업,화가의 길로 들어섰고 아들 병재씨도 미대에 다 니고 있다.형님 오승우화백의 장남 병욱씨는 원광대 미대교수로,상욱씨는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어 한국에선 전례없는 자랑스런 화가집안이다. 『아버님과 다른 쪽을 택했기 때문에 이젠 효를 다하는데 노력할 뿐입니다.』 쪽빛에서 나온 푸른 빛이 쪽빛보다 더 푸른 것을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라 했던가.아버지의이름 석자를 넘어서는 진정한 효를 위해 그가 할 일은 붓끝을 더욱 갈고 닦는 것이다.

<유재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