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누가 내 아내를 웃게 했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5호 15면

얼마 전 집에 인터넷TV(IPTV) 시스템을 설치했다. 그 후로 매일 밤부터 새벽까지 TV 앞에서 떠나지 못 하고 있다. “새벽 네 시, 누가 내 아내를 울리는가?” 어느 IPTV 서비스 광고대로 뜬눈으로 밤을 패기가 일쑤. 소파에서 좌우로 가로눕기를 반복하는 나를 보면 남편은 꼭 한마디한다.

“저거, 괜히 신청했어.” 남편, 그렇다고 내가 집안일을 덜 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그러지 마라. 내 잠자는 시간이 조금 줄어들었을 뿐 그대에게 무슨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니잖아. 얼마 전까지도 케이블TV 당구 프로그램에 푹 빠져 밤잠을 설치던 남편이었다. 내게 소파와 TV 점령권을 빼앗기고 억울해서 그러는 것, 나도 안다.

아무튼 종영 드라마 다시 보기에 열중하다 김정은과 이서진이 출연한 ‘연인’에서 재미난 장면을 발견하고 배시시 웃었다. 이서진·김규리·김정은·정찬이 묘한 사각관계를 이루는 가운데 지하 주차장에서 함께 부딪친 장면. 여자들끼리 약간의 신경전을 벌이다 각각의 커플대로 차를 타러 가는데, 두 커플의 현재 상태를 자동차 문 하나로 묘사한 작가의 발상이 흥미로웠다.

7~8년 사귄 이서진&김규리 커플은 각각 자동차 문을 열었다. 이제 막 사랑을 느낀(일방적이긴 하지만 연애를 시작한) 정찬은 김정은에게 차 문을 열어주었다. ‘잡은 물고기에게 미끼 주는 것 봤느냐?’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연애 시절에는 별도 따줄 것처럼 친절했던 남자가 결혼 후 시간이 흐르면 무뚝뚝해지는 건 흔한 일이다.

오해하지 말기를. 나는 꼭 자동차 문을 남자가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운전석에서 나와 반대쪽 문까지 쇼트트랙 선수가 코너를 돌 때처럼 상체를 기울여 달려가는 남자의 잰걸음을 보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생각하는 쪽이다. 남자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차 안의 여자는 뭘 해야 하지?

그러니까 오늘 얘기하려는 건 신사다운 자상함, 숙녀다운 도도함이 아니다. 연애할 때의 기억을 되살려 가끔은 아내에게 친절한 남편이 되자는 거다. 오늘 외출 길에 차 문을 활짝 열고 허리를 숙여 차 안으로 아내를 초대해 보라. 누가 내 아내를 웃게 하나? 바로 당신이다. 그것도 자동차 문 여는 동작만으로. IPTV 설치보다 싸게 먹히고 효과도 좋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