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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作을찾아서>한승원"연꽃바다".박범신"제비나비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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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독자들은 한국 소설의 참맛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중진작가 한승원(韓勝源.57).박범신(朴範信.50)씨가 장편 『연꽃 바다』와 중편『제비나비의 꿈』을 이번 주말께 나올 계간『작가세계』와 『창작과비평』에 각각 발표한다.이두 작품은 윤회.풍수등 우리의 사상과 정서 그리고 판소리체등 본디 우리의 것을 통해 삶의 의미와 사회를 둘러보며 침체에 빠진 우리 소설의 한 출구를 열고 있어 주목된다.
韓씨의 『연꽃바다』는 박새와 백양나무등 의인화된 자연의 시각으로 탐욕에 의해 파멸돼 가는 인간세계를 그리고 있다.
소설의 무대는 남쪽 끝 바닷가 농장.주인은 시인이자 국회의원출신 박주철.권력으로 농장을 차지한 이 노인은 큰 아들을 잃고깊은 잠에 빠져 있다.
아버지의 권력형 부패에 반항이라도 하듯 큰아들은 운동권에 뛰어들어 반신불수의 휠체어 신세가 돼 이 농장에서 의문의 자살을한 것. 이 농장으로 서울에 있던 큰딸과 둘째아들이 찾아든다.
이들과 농장을 지키고 있던 막내아들간에 농장 상속권을 둘러싸고 탐욕스럽고 추잡한 인간사가 펼쳐진다.
큰아들 죽음의 충격으로 어머니는 죽고 아버지 박주철은 비몽사몽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반신불수였기에 성불능인 형의 아내를 탐하는 두 동생.
살아남은 두 동생간의 재산권 다툼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깨어나자신이 갖다온 축생지옥의 참상을 들려준다는게 『연꽃바다』의 줄거리다. 이 소설은 장편임에도 불구,공간적 무대는 마치 연극의한 세트,아니 우리 마당극의 한 마당처럼 농장 한 군데로 고정된게 우선 두드러진다.거기에 저주받은 한 가족이 등장해 아귀다툼을 벌인다.그러나 시간적 무대는 전생과 현생 그리고 사후를 오가는 무속적.신화적 공간이다.
그 무대를 박새와 백양나무가 지켜보며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는게 이 작품의 특징이다.
축생지옥같은 인간세상은 인간들의 대사나 행동으로 이끌고 박새의 눈으로는 한없이 포근하고 서정적인 자연 세계를 대비시킴으로써 인간이 이제 자연의 순리로 되돌아가야 한다는게 『연꽃바다』가 전하는 메시지다.
『제비나비의 꿈』은 감성적 문체와 스토리텔링의 작가 朴씨가 본디 재래종 소설의 맛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려는듯 작심하고 쓴 중편.『박꽃은 밤에만 펴.휘영청 달 밝은 밤에 만개한 박꽃을 보고 있으면 왜 그리 꿈꾸는 것 같았는지 원.어렸 을 때 얘기다. 네 할머니는 고향집 초가지붕에 해마다 박을 올리고 했거든.박꽃은 밤마다 하얗게 피어나고,논강평야 너른 들을 지나온 바람 가만가만 박꽃마다 건들고 가고,…』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사설 한마당을 판소리체로 걸쭉하게 늘어놓고 있다.
그 사설을 통해 朴씨는 자신의 삶을 둘러보며 인생의 의미를 곰곰 캐고 있다.작품무대는 고향의 채마밭.그 밭일을 아들과 같이하며 자신의 지나온 삶을 이야기해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 멧새며,새매며,박새며,풀이며,꽃이며 끊임없이 자연의생리를 들려주고 있다.
인간세상에 빗대어 걸쭉하면서도 부담없이 아름다운 사설로 독자를 끌어들이며 작가는 메시지를 전한다.
『죽음 같은 탈피의 순간에 제 목숨을 몇번씩 걸고도 모자라,어둠의 관 속에 거꾸로 매달려 긴 혹한을 견딘다는 제비나비,이윽고 신생의 봄날,잔인한 무명(無明)일시에 무너뜨리고 날아가는프시케,그 영혼의 아름다운 각성』을 작가의 전 생을 걸고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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