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패션>여성복 '오브제' 성공스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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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공주병.왕자병은 흔하디 흔한 불치병이다.자고 나면 「내가 공주.왕자임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이순신장군형 공주.왕자병자」「내 공주병은 직업병이다.왜냐하면 공주가 직업이니까」같은 우스개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 안에 숨겨진 폭발적인 힘이 터져나와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곤한다.청순가련형 연기자의 대명사,왕년의 「눈물의 여왕」이던 탤런트 김자옥이 공주병 걸린 푼수 여고생으로 코미디무대에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내지른 「악」 소리처럼 말이다.
김자옥의 변신을,변신이 몰고올 인기의 폭을 아무도 충분히 가늠하지 못했던 것처럼 3년전 압구정동에 처음 옷가게를 연 한 신예 디자이너가 들고나온 「공주패션」의 성공도 예견된 것은 아니었다. 소위 패션트렌드를 예측.분석하는 사람들에게 디자이너 강진영(34)씨의 여성복 브랜드「오브제」가 누리는 인기는 트렌드에 끼워넣기 어려운 돌출적 현상으로 다가왔다.커다란 리본과 꽃장식,양쪽팔에 꼭 끼는 소매선으로 강조한 여성미,풍성한 질감의명주소재,치렁한 치마주름을 엉덩이 뒤에 올려붙여 19세기말의 버슬스타일을 되살린 문자그대로의 「드레스」.
여성미 물씬 풍기는 50년대풍의 우아함이 다시 되살아날 즈음이었다고는 해도 단순하고 절제된 선을 추구하는 세계적인 흐름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멀었다.게다가 한국소비자들이 세계적인 유행에 오죽이나 발빠른가.
하지만 상식적인 소비자들이 쇼윈도를 훑고 지나가며 「누가 사입을까」 걱정하던 이 옷들이 손님을 끌기 시작했다.같은 공주옷이라고 해도 예복 브랜드들이 보여주는 벨벳소재와 풍선치마 일색의 공주옷이 아닌 90년대 감각으로 재단된 공주옷 이 소비자들속에 잠자는 공주의 욕망을 자극한 것이다.
물좋다는 나이트 클럽에서,신세대들의 「파티」에서,기왕에 예복을 입어야 하는 공연장이나 가족행사장에서 오브제의 공주옷을 골라 입는 사람들이 형성돼갔다.여기에 디자이너 브랜드라고 해도 일반 의류업체 브랜드에 가까운 가격대가 경쟁력을 더했다.가격과감각에서 틈새시장을 파고든 것,오브제의 주인이자 디자이너인 강씨는 자신의 성공비결을 이렇게 분석한다.
외형적인 수치로 작년 1백7억원이던 매출규모가 올 연말까지 2백10억원을 바라본다.올 봄 10개던 매장도 현재 19개로 늘어났다.가끔은 황당할 정도로 대담해지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옷입기 취향이 낳은 변덕스런 유행처럼 여겨지던 오브 제의 인기도새롭게 분석되기에 이르렀다.
20대 초반 감각파 신세대 소비자를 겨냥한 다른 브랜드에서도공주옷을 내놓는 이 즈음에는 트렌드에서 벗어난 돌출적인 디자인으로 여겨지던 오브제의 공주패션 자체가 새로운 트렌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세계적인 패션흐름과의 연관분석도 비 비안 웨스트우드나 장 폴 고티에의 전위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감각의 영향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공주패션」이란 수식어에 조롱당하는 듯 몹시 불쾌했었던 디자이너는 이제 자신의 매장을 찾는 고객들 속에서 공주의자질,또는 공주병의 징후를 충분히 발견한다.꼭 끼는 어깨와 잘록한 허리선.일단 기본적인 몸매가 받쳐주지 않으 면 입을 수 없는 옷을 자신있게 골라 입은 손님들은 전신거울앞에서 마치 모델이라도 된 듯 좌우전후를 차근히 비춰보고 고양이 걸음까지 걸어본다.「잘 나가는 것」이라면 일단 달려들고 보는 획일화된 소비자든,남의 눈에 맞추려하지 않고 「 내 취향」을 고집하는 데투자를 아끼지 않는 소비자든,90년대 공주들이 발견해낸 이 디자이너에게 찬사만 쏟아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상업적 성공이 가져올 개성의 상실이나 그가 그려내는 「과도한 여성미」에 대한 반발을 어떻게 넘어설지.
소비자의 입맛을 뒤쫓기보다 디자이너 스스로 입맛을 제안한 오브제의 흔치 않은 성공사례는 지금 새로운 도전앞에 서있다.
□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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