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전문가들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유세과정을 통해 탈냉전 외교의 밑그림이 명료하게 그려지고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길 바랐던 기대가 무산됐기 때문이다.많은 전문가들은 지난 4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미 외 교는 표류할수밖에 없게 됐다고 개탄한다.대통령선거에서 미국 외교를 밀고 갈 원칙이 제시되고 국민들의 승인을 받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니 앞으로 어떤 정책인들 대내외적으로 설득력있게 밀고 갈 수 있겠느냐는 우려다.
양당 대통령후보들조차 미뤘던 이 숙제는 클린턴 집권 2기 워런 크리스토퍼를 대신해 들어올 새 국무장관에게 넘겨졌다.
사실 냉전 이전의 미 외교노선은 단선적이었다.모든 전술은 소련과 공산권의 봉쇄라는 전략적 안경으로 보아지고 평가됐다.국민적 합의는 이미 거기에 있었고 대응책은 자동적으로 마련됐다.논란은 있을 수 있으나 의문의 여지는 없었다.그러나 냉전후 상황은 일변했다.예전의 단순한 도식은 더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단적으로 러시아의 군사력이 무서운게 아니라 경제적 위기가 두려운 상황이다.
최근 로버트 맥나마라 전국방장관등은 핵우위를 여전히 즐기고 있는 미 정부에 핵무기의 완전 철폐를 주장했다.핵무기는 의도적도발이 아니라 우발적인 사고로 발사될 수 있으며 따라서 모든 나라가 갖지 않는게 안전하다는 주장이다.더구나 미국이 핵무기를보유하면서 다른 나라의 핵무기 보유를 막는다는 건 설득력이 약하다고 주장한다.물론 이같은 주장에 대한 반대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런 이견 그 자체에 있지 않다.무엇을 반대하던 냉전외교는 끝났는데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 미 외교의 목표가 아직 불분명한데 있다고 평자들은 지적한다.이들은 미 외교의 본질적인문제들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필요가 어느 때 보다 높은데도 대통령후보들조차 거론을 피할만큼 국내사정이 얽혀 있다고 분석한다.
탈냉전의 신세계는 미국의 인적.물적 부담을 경감시켰지만 탈냉전의 평화분담금을 국민들에게 돌려줄 만큼 넉넉한게 아니다.그런데도 미 국방.외교부문 예산은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다.세계평화유지의 핵심국으로 기능하기 위한 인적.물적 부담의 필요는 늘어가지만 국내정치의 기류는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다.의료부조등 돈들어갈 곳은 많은데 재정적자를 감축해야 하니 쓸 돈도 마땅치 않다는 말이다.
따라서 미 전문가들은 새 국무장관이 하루빨리 미국외교의 새로운 틀을 세우거나 선택해 국내외에 이를 알리고 납득시키는데 주력하길 바란다.국민적 합의와 세계 각국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이런 이유 때문인 지 상원에서민주당을 이끌었던 조지 미첼이 후임 국무장관으로 유력하게 부각된다. 오랜 의정생활로 몸에 밴 대화와 토론능력이 대국민 설득에 적절히 발휘될 수 있으며 삭감일로를 걷는 미 외교예산을 되돌이키는데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 보이기 때문이다.
이재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