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를움직이는사람들>36.청구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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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89년 늦가을 평촌신도시.수도권 신도시 첫 분양을 앞두고 청구 직원들이 물이 괴어 있는 논바닥에 모델하우스 설치작업을 하던 중이었다.이때 격려차 방문했던 장수홍(張壽弘)회장이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이 성에 안찼던지 바지를 걷고 맨발 로 진창으로들어가 직접 망치질을 했다.
이 소식이 회사로 전해지자 설계.홍보.공사.영업등 해당분야 임직원들이 현장으로 모두 달려오는등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즉석에서 모델하우스의 방향.내부구조등에 대한 「무논 강의」가 진행됐다. 이런 張회장의 「현장중시 경영스타일」은 바로 그의 인사철학과 연결된다.「부지런한 새가 모이를 먹는다」는 게 張회장이사람을 부리는 원칙이다.능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발로 뛰는 사람을 우선한다.
이 기준에 맞지 않는 일을 한 사람은 혹독하게 몰아친다.몇년전 한 임원이 회장실에 불려가 얼마나 혼났던지 옷장문을 출입문으로 착각해 회장실을 나간다는 것이 회장실 옷장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러나 張회장은 복도에서 그 임원과 마주치자 『힘들지』라며 어깨를 두드려주었다고 한다.지난 2일의 직원단합대회는 회장이 바텐더가 돼 직원들의 술시중을 드는등 직급파괴를 통한 일체감 조성을 위한 파격적 행사였다.
張회장은 요즘 젊은 학생들과 어울려 컴퓨터를 배우면서 강사들이 피곤할 정도로 열의를 보이고 있다.때문에 고려대 컴퓨터과학기술대학원 강사들 사이에선 제일 「골치 아픈 학생」으로 알려져있다.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제1기 정보통신과정의 학생중 한명인 張회장이 회선결함으로 인터넷 연결이 잘 안될 때면 대학원장에게 직접 항의해 시정을 요구하거나 조교를 닦달한다.
張회장이 이 수업에 열성을 보이는 이유는 최근 주파수무선공용통신(TRS)사업과 광케이블 회선임대사업에 지분을 참여했고 앞으로도 미래사업으로 전력투구할 분야라는 그룹의 장기전략에 따른것.자신이 먼저 알아야만 사업을 진두지휘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張회장의 경영스타일과 청구그룹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대목이다.무논에서의 맨발정신이 오늘의 청구를 있게 한 과거였다면 「골치아픈 학생 장수홍」은 미래를 준비해가는 모습이다.
청구는 73년 張회장이 사원 12명을 데리고 단독주택을 지어파는 「집장사」로 시작했다.
청구가 주택전문회사로 전국에 알려진 것은 86년.78년 대구에서 2차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지역기업으로서의 한계를 절감하고82년 서울사무소를 냈다.
4년간의 준비작업 끝에 86년 노원구중계동에 첫 작품을 내놓았다.지방주택업체로서는 처음으로 서울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국내에선 처음으로 24평형에 화장실을 2개 넣고 거실에 실내분수를 설치해주는 혁신적인 평면을 제시했다.대성공이었 다.무려 37대1이라는 놀라운 경쟁률을 기록한 것이다.
중계동의 명성이 잊혀질 무렵인 89년 신도시사업이 터지면서 청구는 일대 도약의 전기를 맞는다.
신도시를 계기로 주택분야에서 자리잡자 張회장의 「탈(脫)주택」이 시작됐다.청구아파트에 점수를 높이 준 주부들을 유통으로 끌어들이기로 한 것이다.92년 블루힐 백화점(96년 8월 오픈) 부지를 사면서부터 사업다각화가 이어졌다.
현재 지방방송국을 포함,8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했지만 아직도 「청구」하면 「주택업체」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그룹 구조를 보면 주력업체인 건설(청구.청구주택.청구산업개발)외에▶유통(블루힐백화점.왕십리민자역사)및 물류(대구복합터미널)▶정보통신(아남텔레콤과 두루넷의 주요 주주)▶방송(대구방송)및 영상(파라비전)부문으로 다각화돼 있다.96년 현재 공정거래법상의 자산순위는 재계 35위.
그러나 이중 주택 3사가 전체 매출액(9천억원.95년말 기준)의 90%를 차지해 아직까지는 주택전문업체 성격이 강한 편이다. 張회장은 94년9월 그룹체제로 출범한뒤 회장결재란을 없앴다.거의 모든 권한을 사장단에 위임했다.그의 자녀(2남1녀)가모두 학생이어서 후계문제에 신경쓰지도 않는다.
張회장은 전문경영인들에게 거의 모든 권한을 물려준 지금도 아직 놓지 않고 있는게 있다.바로 아파트 설계와 평면,홍보 두가지다.張회장은 해외 나들이때도 항상 한꾸러미씩 주택관련 자료를수집해온다.
***외부인사 영입많아 홍보마인드 또한 張회장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비교적 빠른 시기인 92년 기업이미지 통일(CI)작업을 마쳤다.그는 이동중인 차로 담당자를 불러 광고시안을 검토하기도 한다.
청구는 주택사업과 동떨어진 신규사업을 펴는 과정에서 외부인사를 많이 영입했다.
계열사 8개중 청구주택.청구산업개발을 제외한 6개사의 대표이사와 이수환(李壽晥)부회장이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경영인이다.
본거지인 대구사업을 총괄하는 일이 김시학(金時學)부회장의 몫이다.그는 張회장의 손위 처남.
78년 전기부장으로 입사해 오늘의 청구그룹을 일군 창업공신이기도 하다.81년까지 기술부문을 담당하다 그 이후부터는 대구를총괄하고 있다.「대구의 마당발」로 통한다.청구문화제.국제경제 심포지엄.씨름단.볼링단등 지역 문화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호탕한 성격에 섬세한 면도 갖춰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
***이수환씨 팀制도입 공신 94년 전문경영인 공채때 그룹종합조정실이 신설되면서 총괄사장으로 영입된 이수환부회장은 삼성그룹에서 뼈를 굳힌 관리통이다.팀제 도입.임원 업적평가제.5개년발전계획등이 그의 작품.張회장을 대신해 그룹을 총괄하면서 그룹다각화의 비전 을 제시해주는 임무가 주어져 있다.수치에 밝고 치밀하다.모기업인 ㈜청구의 황성렬(黃成烈)사장은 유원건설.중앙건설 사장을 거친 건설맨이다.꼼꼼한 편이며 직원들의 개인적인 어려움도 잘 챙겨주는 자상함도 갖추고 있다.
청구주택의 이상철(李相喆)대표이사 부사장은 옛 건설부.조달청.서울시공무원에서 삼익주택.신동아건설 상무를 거쳐 90년 청구로 옮겨 신도시 아파트사업을 성공시키는데 기여했다.청구그룹은 건설의 매출비중을 50%로 줄이고 유통이나 정보통 신의 비중을높여 올해 1조2천억원(추정치)인 매출액을 99년까지 3조6천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앞으로 5년내에 건설.유통및 물류.정보통신.방송및 영상.금융등을 5개축으로 하는 재계 랭킹 30위의 종합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청구의 꿈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다음은 거평그룹편>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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