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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이 삼촌의 꽃따라기] 좀딱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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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안면도는 원래 섬이 아니었다. 세곡 운반의 불편함 때문에 운하를 내어 섬이 됐다가 현재는 연륙·연도교가 놓이면서 다시 이름만 섬이 됐다.

내가 안면도를 찾게 된 것은 순전히 꽃지해수욕장의 낙조 때문이다. 필름카메라를 쓰던 시절에 가슴 뭉클한 선홍빛 일몰을 보고는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는데 필름을 잘못 넣은 바람에 모두 날리고 말았다. 디지털 카메라를 쓰고부터는 허구한 날 가서 스러지는 빛의 아름다움을 담아 왔다. 하지만 처음 봤던 순간과 같은 노을을 볼 수는 없었다.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독특한 사구식물 외에 매우 다양한 식물이 자생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일몰에 빠졌을 때보다 더 자주 안면대교를 건너다녔다. 남부 지방에서나 볼 수 있다는 호자덩굴·자주잎제비꽃를 발견하고는 혼자 신기해했다. 위도상으로 안면도는 중부 지방이지만 해안이다 보니 남부 지방의 식물상이 혼재돼 나타나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왕씀배의 자생지를 비롯해 이 지면에 밝히기 곤란한 귀한 식물들의 자생지를 확인했다.

올봄에도 새로운 장소를 알아내 다니던 중 처음 보는 식물을 만났다. 광택이 나면서도 털이 많은 오각형의 잎이 방석처럼 여러 개 모여 나는 식물이었다. 개체수가 워낙 많았다. 이리 흔한 것을 몰랐다니 하는 생각에 블로그에 올렸더니 어느 분께서 그게 좀딱취라고 일러 주셨다. 도감을 찾아보니 좀딱취는 남부 지방의 섬에서나 볼 수 있다고 돼 있었다. 이상하긴 했지만 안면도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 뒤로 갈 일이 있을 때마다 애인이 사는 집인 양 들여다보곤 했다. 7월 즈음에 기다란 꽃차례가 올라왔다. 얼른 꽃을 찍어 올리고 싶어 1~2주일 간격으로 찾아가 봤지만 이상하게도 꽃은 전혀 필 기미가 없었다. 대체 꽃은 언제쯤 피는 걸까. 동호회 사이트를 검색해 보니 10월 중순이나 돼야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가을꽃인 것이다. 그럴 걸 뭐 하러 일찌감치 꽃차례를 만들어 나를 애먹인 건지, 작고 보잘것없는 좀딱취가 얄미웠다. 하여 진득하게 참고 지내기로 했다. 그러다 문득 10월 달력을 보니 좀딱취가 생각났다. 부리나케 달려가며 혹시 지금까지 피지 않았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도 여러 번 속아서 말이다.

꽃이 보이지 않아 실망했는데, 허리를 굽혀 뒤져 보니 코딱지만 한 꽃이 드디어 눈에 들어왔다. 단풍취 비슷하게 생긴 3개의 작은 흰색 꽃이 모여 피는 점이 특이했다. 그 작은 꽃을 보기 위해 안달했던 시간이 우스워 웃었다.

글·사진=이동혁 http://blog.naver.com/freebo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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