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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가 미디어도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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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월가의 화려한 금융인의 삶을 다룬 미국 소설가 캔더스 버시넬의 소설 『트레이딩 업』은 할리우드에서 몇 달 전부터 영화화 작업이 진행돼 왔다. 하지만 최근의 금융위기로 각본이 대폭 수정됐다. 증권 투자로 대박을 치는 스토리 대신 채권에 안전하게 투자하는 금융인이 나온다. 밉살스러운 금융업계 최고경영자(CEO)도 등장하게 됐다. 영화 작업을 진행 중인 라이프타임사는 “시나리오가 하룻밤 만에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게 돼 버려 내용을 대폭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가 미국 드라마와 영화 내용도 바꾸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22일 보도했다. 장수 TV 드라마 시리즈인 ‘로 앤 오더(Law and Order·사진中)’도 금융위기와 관련된 내용을 여러 개의 에피소드 형태로 새로 집어넣고 있다. ‘살림 여왕’으로 유명한 마사 스튜어트上는 돈을 절약하는 팁을 알려 주는 고정 코너를 매일 진행하는 자신의 토크쇼에 신설하기로 했다. 20세기폭스사는 1987년 올리버 스톤의 ‘월스트리트’ 영화의 후속편 격인 드라마 ‘월스트리트’ 방영 편수를 대폭 줄일 예정이다. 대신 블루칼라 노동자 계층이 불황을 견디는 상황을 묘사한 코미디물 ‘2달러짜리 맥주(Two-Dollar Beer)’ 시리즈의 편성분을 늘리기로 했다.

할리우드는 변화하는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내용을 발 빠르게 만들어 왔다. 2000년 정보기술(IT) 업체들의 주가가 폭락한 ‘닷컴 버블’ 붕괴 직후엔 ‘패스워드(2001년·下)’ 같은 영화가 나왔다. 빌 게이츠를 연상케 하는 IT 천재 겸 재벌이 돈을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87년 주가 급락 직후엔 기업가나 금융인이 악당으로 나온 영화가 나왔다. ‘사랑과 영혼(90년)’에선 돈과 직업 보전에 연연하는 주인공의 친구가 주인공을 살해하는 악한으로 등장했다.

새로 영화 제작을 모색하는 영화사들은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 장르에도 관심을 돌리고 있다. 사람들이 현실 상황이 심각할수록 이를 회피할 수 있는 가벼운 코미디물이나 공상과학 영화를 선호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30년대 대공황기에도 판타지물 ‘오즈의 마법사’나 코미디물,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아역 배우인 셜리 템플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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