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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문화인물 선정 澗松선생 추모 특별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실례되는 줄 아오나 모처럼 수장하신 귀한 물건을 저에게 넘기실 의향은 없으신지요.지불하신 값의 두배를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쌀 1백섬만 있으면 자식들 공부시키고도 평생 편안히먹고 살 수 있었던 1935년 수백섬 값에 달하는 2만원을 주고 「그」가 손에 넣은 고려 최고의 명품 천학매병(千鶴梅甁).
나이 오십을 넘긴 오사카(大阪)의 거상 무라카미는 이것을 사기위해 30세가 채 안된 조선청년과 마주앉았다.
『무라카미상.이보다 더 좋은 물건을 저에게 가져다 주신다면 이 물건은 제값에 드리지요.저도 대가는 치를 용의가 있습니다.
』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이 유명한 일화는 「그」가 이 땅의 문화재를 어떻게 지켜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려자기의 대명사로 오늘날에도 수많은 모조품이 만들어지는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일명 천학매병).』해가 바뀔 때마다 어디선가 달력 그림으로 찍어낼 만큼 낯익은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풍속화집 국보 제135호『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너무 유명해 진부하게까지 느껴질 만큼 친근한 이 명품들은 「그」가 이 땅에 없었다면 모두 일본의 창고 한구석에서 그 빛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62).그를 단순히 고미술품 수집가가 아닌 민족지사로 부르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 힘도없었던 일제 치하에서 이처럼 우리 문화재의 유출을 막아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부가 정한 11월의 문화인물 간송을 기리기 위한 「간송추모특별전」이 그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박물관인 간송미술관(보화각)에서 3일부터 17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간송이 일제 암흑기에 수집한 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수장유래를 분명히 알 수 있는 작품 위주로 1백여점이 선보인다.여기에는 지난 91년 간송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만 모아 전시했던 「간송 30 주기 기념전」에 나왔던 지정문화재가 모두 들어있다.또 간송의 유작 일부도함께 공개된다.한마디로 간송미술관의 대표 명품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다.
간송이 문화재 보호에 눈뜬 것은 「문화유산은 그 국민의 정신적 생명의 뿌리」라고 믿었던 미술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1864~1953)선생을 만났던 와세다(早稻田)대 유학시절.일본의 식민통치가 20여년동 안 이어져 이미 최고의 서화와 골동품은 일본 권세가들에게 넘어가 있던 때였다.29년 24세의 나이로 조선 제일의 갑부였던 아버지 형제의 10만섬 재산을 상속받자 귀국해 바로 문화재 수집에 나섰다. 간송은 28세때인 33년 겸재(謙齋) 정선(鄭)의 진경산수화첩인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과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의 필생의 역작 『촉잔도권(蜀棧圖卷)』을 손에 넣는다.가평의한 양반집이 수장하고 있던 30척짜리 산수화 두 루마리 『촉잔도권』은 보관이 잘못돼 몹시 상한 상태였다.한 거간꾼이 서울 문광서림에 보내면 보수할 수 있다고 해 이를 맡겼으나 어렵다는말을 듣고 거간꾼에게 1천원에 팔았다.이 작품은 문광서림을 거쳐 5천원에 간송에게 팔렸다.문광서 림 주인이 사람을 놓아 계획적으로 입수한 것.간송은 이를 교토(京都)로 보내 6천원을 들여 수리,표구했다.
수장에 얽힌 이런 뒷이야기를 알고 이번 전시를 감상하면 그 맛이 한층 더할 것이다.02-762-0442.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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