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대학인의 自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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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올해 서울대학교는 개교 50주년을 맞았다.국립종합대학으로 출범한지 반(半)세기가 되는 해이므로 개교기념일인 10월15일을전후해 음악회.체육대회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그 중에서도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의 역할을 생각할 때 아무래도 50년동안의 학문 발전상을 짚어보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며칠간에 걸쳐 진행된 「서울대학교 학문연구 50년」행사를 지켜보고 나서 느낀 점은 대학내의 떠들썩한 축제의 분위기와는 달리 무엇인가 허전하고 씁쓸한 느낌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소위 우리나라를 대표한다고 자타(自他)가 공인하는 대학에서,5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이뤄놓은 학문적 업적 가운데 세계를 향해 자랑스럽게 내놓을 만한 것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발표자들이 서울대 교수들이라 자기 대학을 대놓고 자랑하기 어려운 동양적 겸손이 작용했는지 모른다.또한 일반적으로 타인의 업적을 인정하는데 인색한 학자들의 태도가 일조(一助)를 했을 수도 있다.그러나 아무래도 대학의 학문적 역량축적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근본적인 원인일 수밖에 없고,이러한 사실은 여러가지 다른 객관적인 평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교육위원회는 우리나라 교육부문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학의 시설과 연구기능이 낙제점이며 「한국의 대학은 다른 사회분야의 발전에 보조를 못 맞추고 있는데다 사회의 기대와의 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지난해 과학기술부문 평가를 담당했던 OECD 관련전문가들도 대학의과학기술 연구개발기능 취약이 앞으로 한국의 지속적인 경제발전을위해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었으므로,우리나라 대학은 선진국 기준으로 보자면 형편 없다는 것이 재확인된 셈이다.
이렇게 대학이 낙후된 원인으로 대학인(大學人)들은 이구동성으로 정부와 사회의 대학에 대한 인식부족과 그에 따른 투자부족을들고 있다.실제로 그래도 여건이 낫다는 서울대도 연구기자재나 교수1인당 학생수등 교육 연구여건을 살펴보면 선 진국의 대학에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와 직접 경쟁관계에 있는 대만이나 싱가포르의 국립대학에 비해서도 크게 뒤지는 것이 사실이다.앞서 말한 OECD 보고서에서도 우리나라 대학의 연구비를 획기적으로 증액하고 연구및 교육시설 현대화에 엄청난 투자를 해야만 국제적으로 경쟁력있는 대학교육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권고하고 있다.그러나 과연 우리나라 대학의 이러한 부끄러운 현실에 대해 대학인들은 정부의 투자부족과 사회지도층의 미래 비전결핍을 비난하면서 『 네탓이오』만 외치고 있으면 되는 것일까.
그동안 정부나 기업에서 한국의 발전을 주도한 우리나라 사회지도층은 자신들의 대학생활과 사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 나름대로 최선의 판단을 해 대학에 대한 투자 우선순위를 뒤로 미뤘을 것이 틀림없다.대학은 이들을 4년동안이나 교 육하면서도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대학이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식시키는데 실패했던 것이다.
그것은 대학이 지성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현실과 미래에 대한 치열한 비판정신을 함양하는 마당이 되지 못하고,안일한 분위기에서 개인의 출세를 위한 졸업장을 받아가는 단순 통로나 고시준비의 자리만 돼왔던 때문은 아닐까.대학인들이 사 회의 무분별한 팽창주의와 집단이기주의를 입으로는 비판하면서,기회만 있으면자기 대학과 소집단의 양적 팽창을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쓰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한 모습을 보여준 때문은 아닌가.교수가 진리탐구와 지식창조의 뼈깎는 노력을 소홀 히 하고,우리실정에 맞는지 검증하는 노력도 게을리한채 해묵은 외국 이론을 그대로 되뇌는 어설픈 「지식중개상」의 역할에 만족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또한 이들이 교수의 신분을 무기로 전문가로서 도도하게 처신할 때,이런 반(反)지성적 풍 토를 비판하는 내부적 자정(自淨)기능이 부족했던 때문은 아닐까.
대학이 철저한 비판정신과 지성으로 무장하지 못하고 최근 어느서울대생 부모가 걱정한대로 「가슴이 섬뜩할만큼 선택된 자로서의오만한 눈빛」을 가진 졸업생만 양산(量産)한다면 우리 대학의 앞날은 투자의 다과(多寡)에 관계없이 계속 암 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吳世正 〈서울대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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