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새 건물들 디자인 혁명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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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 강남구 삼성역에서 학여울역 쪽으로 영동대로를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시선을 잡아끄는 건물 하나가 서 있다. 스테인리스 패널이 외벽을 덮고 있는 이 건물 앞면에는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지름 3∼10m에 이르는 원 모양의 채광창 일곱 개가 뚫려 있다. 창틀은 밖에서 안을 향해 서너 차례 지름을 단계적으로 줄여가며 음각을 하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스테인리스 패널에는 창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새겨 놓았다. 각각의 채광창이 음향기기에 쓰이는 원 모양의 콘스피커를 닮은 것이다. 금호건설이 6월에 개관한 ‘크링(kring)’이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이다. 크링은 네덜란드어로 ‘원’을 의미한다. 장윤규(국민대) 교수가 이끄는 ‘운생동’이라는 건축가그룹이 설계했다.

외벽에 벌집처럼 지름 1m 크기의 구멍 3800여 개를 뚫어 소통을 강조한 논현동의 어반하이브.동심원 모양의 넓은 채광창이 특징인 대치동의 복합문화공간 크링. 밝고 화사한 느낌으로 리모델링한 일원동 까치어린이공원의 화장실.과 외벽에 동그란 구멍을 뚫어 내부를 환하게 만든 논현3호 주차타워.[최승식 기자]


크링의 홍보담당 박은주씨는 “건축의 모티브를 원으로 한 것은 이 건물이 자유로운 소통을 추구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문화·예술·감성을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런 취지답게 크링은 미술전시회를 무료로 열고, 지역의 문화·예술단체에 회의 공간도 무료로 빌려준다. 건물에 입주한 비상업영화관과 커피숍 ‘커피명가’는 입장료와 커피값을 받지만, 이 돈은 단편영화제 및 소아암협회 등에 전액 기부하고 있다.

올 들어 강남구에는 크링처럼 독특한 디자인과 컨셉트의 건물이 많이 생겼다. 이들 건물은 기존 건물이 가지는 보편적 이미지를 깨면서 ‘건물 디자인 혁명’을 이끌고 있다. 이들 건물에서 공통적으로 표방하는 철학은 ‘소통’이다.

서울 논현동 강남대로 옆의 17층 높이 건물 ‘어반하이브’. 오피스 빌딩 용도로 7월에 완공된 건물이다. 1층에는 레스토랑(테이크어반)이 영업 중이고, 나머지 층에는 금융회사 등이 입점해 있다. 이 건물 콘크리트 외벽엔 지름 1m 크기의 동그라미 구멍이 3800여 개 뚫려 있다. 이 구멍으로 햇살이 비치고, 바람도 불어온다. 어반하이브(Urban Hive)란 ‘도시의 벌집’이란 뜻이다. 외부와 내부를 차단하는 통상적인 외벽과는 차이가 난다. 외벽 안쪽에는 적당한 넓이로 테라스 공간을 내고, 그 안쪽으로 통유리를 세워 외풍과 외기를 막는다. 이 건물 내 사무실은 어디에서도 동서남북 방향의 하늘과 주변 건물을 볼 수 있다. 김인철(중앙대) 교수가 설계했다.

디자인 혁명은 민간 건물로만 제한되지 않는다. 강남구청이 민자를 유치해 지난달 완공한 지상 8층짜리 ‘논현3호 주차타워’(공영주차장)는 수많은 동그라미 구멍이 뚫린 알루미늄 패널로 외벽을 처리했다. 내부가 환해 여느 주차타워 같은 우중충한 느낌이 없다. 강남구는 일원동 일원까치어린이공원에 있던 낡은 화장실을 8월에 새로 지으면서 외벽을 통유리로 만들었다. 화장실에서 꼭 필요한 ‘개인만의 공간’을 빼면 외부에서 안이 들여다보인다.

이처럼 개성 있는 건물이 속속 들어서는 현상은 최근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진 때문으로 풀이된다. 강남건축사회 황재훈(61) 회장은 “상대적으로 많은 해외 경험으로 새로운 디자인에 개방적인 강남 건축주들이 건축가가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남구청 이계섭 건축과장은 “우리 구청 건축심의위원회에 참여하는 유명 건축가들이 높은 수준의 디자인을 적극 주문하는 것도 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시윤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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