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는 성인병 예방 ‘보물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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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는 이미 세계적인 웰빙 식품의 대열에 합류했다. ‘여러 종류의 향신료를 넣어 만든 스튜(stew)’라는 뜻이다. 여기엔 코리안더·강황·후추·계피가루·겨자·생강·마늘·박하잎·칠리 페퍼·사프론·베이 잎·정향·육두구 등 20여 가지 다양한 향신료가 들어간다. 이 중 핵심은 강황(심황·turmeric)이다. 다른 재료는 몰라도 강황이 빠진 카레는 상상할 수 없다. 열대 아시아가 원산지인 강황은 생강과에 속한다. 카레엔 강황이 25∼35%나 들어 있다. 강황에 함유된 성분 중 건강과 관련해 최근 가장 주목받는 것은 커큐민. 강황의 1~7%(보통 2% 내외)가 커큐민이다.

13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선 한국식품과학회 주최로 ‘카레의 건강과 미용’에 관한 1회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자리에선 카레, 특히 커큐민의 항암·심장병 예방효과가 집중 조명됐다.

◆전립선암 예방에 유용=서울대 약대 서영준 교수는 “강황의 커큐민(노란색 색소 성분), 생강의 진저롤(매운맛 성분), 고추의 캡사이신(매운맛 성분)을 ‘향신료 3총사’로 규정했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면 마늘의 냄새 성분인 알리신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유해산소를 없애 암 생성을 억제·지연시키는 항산화 성분이라는 것이다. 특히 커큐민은 서양에서 ‘큐어쿠민(curecumin, cure는 치료라는 뜻)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단다.

서 교수는 “커큐민이 쥐의 피부암 진행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우리 실험실에서 밝혀냈다”며 “커큐민의 항암 효과는 NF-kB·iNOS 등 염증 유발인자의 활성을 억제하기 때문일 것”으로 풀이했다.

카레의 커큐민이 전립선암의 예방·치료에 유익할 것이라는 발표도 있었다.

카레를 즐겨 먹는 인도인의 전립선암 발생률이 서구나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것이 근거였다. 동물실험에선 커큐민이 전립선암의 성장과 전이를 억제한다는 사실이 이미 확인됐다.

이를 근거로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 최한용 교수는 전립선암 환자를 대상으로 커큐민의 효과를 밝히는 임상연구를 실시 중이다.

전립선암 환자는 남성호르몬 분비 억제를 위해 호르몬제 치료를 받는다. 전립선암이 남성호르몬에 의존해 자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르몬제 치료 뒤 2∼5년이 지나면 호르몬제에 내성이 생겨 약발이 듣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최 교수는 “호르몬제에 내성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치료 도중에 투약중지 기간을 갖는다(이 기간이 길수록 환자가 더 오래 산다)”며 “이때 호르몬제 대신 커큐민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심장마비를 막는다=커큐민이 심장마비의 발생을 막는다는 발표도 주목을 받았다.

일본 교토 메디컬센터 고지 하세가와 교수는 “심장마비는 고혈압이나 심근경색 뒤 심근(心筋)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지면서 심장의 수축·이완에 의한 혈액순환 기능이 마비되면서 발생한다”며 “현재까지 연구된 바로는 심근세포의 비대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성분이 커큐민”이라고 밝혔다.

커큐민의 심부전 등 심장병 예방 효과는 동물실험에서 이미 증명됐다(‘저널 오브 클리니컬 인베스티게이션’ 2008년 2월). 그러나 심부전 환자나 심장마비 고위험군이 커큐민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선 안 된다.

◆치매 예방에 기여= 카레의 나라 인도에서 온 프라카시(인도 중앙식품기술연구원장) 박사는 “카레는 독성이 없어 섭취에 제한이 없다”며 “알츠하이머형 치매·파킨슨병 등 노인성 질환 개선 효과도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실험에선 카레의 알츠하이머병 예방 효과가 상당 부분 입증됐다. 사람에선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다. 인도인의 알츠하이머병 발생률이 미국인의 4분의 1에 그친다는 정황 증거 정도다. 여기서 알츠하이머병 예방 성분으로 꼽힌 것도 커큐민이다. 커큐민이 항산화·항염증 효과를 발휘해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 발견되는 플라크(베타 아밀로이드)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카레의 ‘옥에 티’=최한용 교수나 프라카시 박사는 모두 카레와 커큐민이 ‘무독성’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단점은 있다. 노란색 커큐민이 치아를 금세 노랗게 물들인다는 것이다. 싱크대에 떨어진 카레 얼룩은 금방 닦아도 꽤 오래간다. 카레를 먹은 뒤 설거지를 미루면 식기에 노란 색이 남는다. 치과의사들은 카레를 먹은 뒤 즉시 양치질을 하라고 조언한다. 외식 후 칫솔질이 어렵다면 맹물로라도 입 안을 헹구는 게 좋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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