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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감사원의 이상한 답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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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직불금 사태를 바라보는 여론이 악화일로다. 농심(農心)은 분노를 넘어 폭발 직전이다. 17일 국회 법사위의 감사원 국감은 이런 상황에서 열렸다. 예정일(24일)에서 일주일이나 앞당겨진 ‘긴급’ 국감이었다.

국감이 시작되자마자 의사진행 발언이 터져 나왔다. 자료 제출 요구에 불응한 감사원을 질타하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이날 의원들을 더욱 분통 터지게 만든 건 감사원의 답변 자세였다.

김황식 감사원장은 “위원회 내 결의로 효력이 있는 절차를 거쳐 요구한 것은 검증이든 열람이든 받아들이겠다”며 “그러나 의원 개별 요구 사안에 대해선 감사원 논리와 관행에 의해 의견이 있으면 말하겠다”고 토를 달았다. 여야가 합의로 요구하는 자료는 제출하겠지만 의원 개개인이 원하는 건 줄 수 없다는 취지였다.

의원들은 “국감은 법률에 의해 하는 것이지 감사원의 관행에 의해 하는 것이 아니다”거나 “지금 감사원이 국회 위에 있다는 거냐”고 반발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피감 기관에 자료를 요구할 때마다 일일이 여야가 합의를 해달라는 것은 처음 듣는 논리였다.

감사원의 이해 못할 답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날 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폐기된 것으로 알려진 부당 수령자의 명단 공개를 요구했다. 김 감사원장은 “명단을 잘못 공개하면 마녀사냥식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며 “그러나 무조건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국민적 요구가 있다면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대법관 출신인 김 감사원장이 철저한 의혹 해소를 요구하는 국민의 여론을 잘 몰라서 이런 말을 한 것일까. 김 감사원장의 발언을 선의로 해석하더라도 감사원은 여론에 대한 ‘깜깜이’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감사 자료 미공개를 결정한 지난해 감사위원회 회의록도 의원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비공개 결정 과정이 회의록에 딱 세 줄로만 기술돼 있었다고 한다.

감사원은 감사 내내 ‘독립적 지위’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독립성은 말로만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감사원장을 지낸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대통령에게 감사결과를 사전 보고한 것은 감사원 스스로 독립성을 훼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리를 감시·적발하라고 세워진 감사원이 공직자의 비리를 적발하고도 이를 슬쩍 덮어버린 ‘직무유기’ 사건으로 지금 민심이 예사롭지가 않다. 감사원은 자신들의 본연의 임무가 무엇인지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 봐야 할 때다.

이가영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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