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진료시대] 中. 종이 없는 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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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당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의 한 의사가 병실에서 환자를 살펴보고 있다. 환자의 진료기록과 상태는 무선으로 연결된 노트북과 개인정보단말(PDA)에 바로 입력돼 의료진이 언제 어디서나 내용을 볼 수 있다. 이 병원은 종이 차트와 필름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김형수 기자]

회사원 신모(50)씨가 등에 심한 통증을 느껴 분당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은 것은 지난 1월 14일 오전 5시쯤. 응급실 당직의사는 즉시 CT를 찍어 흉부외과 전문의 임청 교수의 집으로 연락했다. 임교수는 집의 PC로 병원 서버에 접속, CT사진을 본 뒤 수술 준비를 지시했다. 신씨는 대동맥의 벽이 찢어진 '대동맥 박리'증상으로 시간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임교수는 50분 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수술에 들어갔다.

신씨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이 병원의 웹팩스(Web PACS) 덕분. X선.CT.심전도 등 각종 영상을 컴퓨터에 보관하고 인터넷을 통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임교수는 "심장 질환은 빠른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예전처럼 출근해 필름을 본 뒤 수술 결정을 했다면 3~4시간이 더 걸려 위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기술(IT)이 의료와 결합하면서 진료현장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환자의 병원 가는 횟수를 줄이는 등 의료 서비스의 질이 한 단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종이.필름 없는 병원=서울 역삼동 제일정형외과병원에서 무릎을 치료받은 회사원 朴모(40)씨는 종이 없는 병원을 실감했다.

접수-진찰-X선 촬영-다시 진찰-처방-수납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의뢰서나 처방전을 볼 수 없었다. 이 병원이 1년 전 도입한 처방전달시스템(OCS) 덕분이다. 이 시스템은 수납.진료.촬영 등 서로 다른 부서의 업무를 연결할 때 쓰던 각종 의뢰서를 없애버렸다.

현재 240개 병.의원에 도입돼 있는 의료영상시스템(PACS)은 필름을 없앨 뿐만 아니라 응급상황이나 촬영 결과 판독시간도 단축시켰다. 과거에는 CT를 찍고 며칠 뒤 다시 병원에 가 결과를 듣던 것을 요즘에는 하루에 끝내는 경우가 많다.

또 전자의무기록(EMR)은 병원에서 종이차트를 없앴다. 환자가 어디가 어떻게 아파서 왔고 어떤 치료.처방을 했는지 컴퓨터에 저장한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분당 서울대병원은 국내서 가장 발전된 EMR를 운영 중이다. 저장한 데이터는 개인휴대단말(PDA)이나 무선 노트북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 병원 황혜영(36)수간호사는 "입원 환자의 상황을 간호사가 컴퓨터에 입력하면 의사가 어디에 있건 내용을 파악하고 지시를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진료가 곧 연구=종이.필름.차트가 없는 e-병원이 구성되면 의료진은 보다 효율적인 진료를 할 수 있다.

EMR를 운영 중인 삼성서울병원 박철우 정보전략팀장은 "차트를 뒤져 환자의 기록을 찾고 정리하는 작업은 큰 부담이었다"며 "그 시간에 진료를 더 할 수 있어 의사.환자의 만족도가 모두 높아졌다"고 말했다.

보다 과학적인 진료도 가능하다. 과거의 진료 사례를 쉽게 참조할 수 있다. 진료 자체를 연구로 연결시킬 수도 있다. 실수에 의한 의료사고나 과잉.과소 진료도 줄어든다.

이에 따라 서울대병원은 올 가을 서울 본원에도 EMR를 도입한다. 또 전국 국립대병원들은 서울대병원과 협력해 연차적으로 EMR 구축에 나선다. 삼성서울병원과 인하대병원 등도 이를 활용 중이고 서울아산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은 도입작업이 한창이다.

신성식.이승녕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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