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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보다 섬세하고 아프리카보다 야성적인 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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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호 05면

짙은 어둠의 정글과 찬란한 고대 문명, 축구와 탱고, 대평원과 테킬라의 고장으로 알려진 남미는 아시아인에게 ‘마지막 여행지’이며 모든 여행자의 꿈이다. 멀게만 느껴지는 그곳은 그러나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이민 100년, 수교 50년, 배낭여행 10년 맞는 한국 속의 남미

본래 남미의 원주민은 몽골리안 루트를 따라 이주해 간 몽골족이라고 한다. 그리고 1905년 1000여 명의 조선인을 실은 배가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 ‘애니깽(용설란)’ 농장에 닿았다.

당시 첫 집단 이민의 참상은 영화 ‘애니깽’과 소설 『검은꽃』 등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흘러 한국과 브라질이 59년 처음 수교한 뒤 줄줄이 남미 국가들과 외교 관계가 수립됐다. 이후 한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남미 이민을 장려하기 시작해 63년 브라질 첫 집단 이민 이래 지금까지 10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이주했다.

80년대 베스트셀러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와 90년대 『체 게바라 평전』을 거쳐 보사노바 음악을 국내에 소개한 영화 ‘흑인 오르페’와 탱고 유행을 일으킨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영화 ‘해피 투게더’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소개되던 라틴 문화에 대한 관심은 99년 다큐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폭발했다. 그 이후엔 해외 배낭여행 붐을 타고 남미에 다녀온 사람들이 라틴 문화를 직접 들여오기 시작했다. 이제 남미는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나라가 아니다.

남미 여행서도 근래 여럿 출간되었다. 『그라시아스 라틴』(애플북스 펴냄)을 낸 박명화씨는 “아시아보다 신비하고 유럽보다 섬세하고 아프리카보다 야성적인…, 그 얽히고설킨 혼혈의 땅에서 나를 풀어헤치고 진정한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고 한다. “마리아치가 연주하는 살사가 흘러나오는 거리, 담백한 타코와 감칠맛 나는 엔칠라다, 어느 것 하나 멋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연작소설『불륜과 남미』를 쓴 일본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표현을 들여다보자. “짙푸른 하늘에 콘도르가 날고 생명의 지독한 냄새가 충만한 이 공간에서는, 엄격한 자연과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초래된 피비린내 나는 비극으로 점철된 땅에서는, 흐름에 자신을 맡기든지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강렬한 하나의 힘을 가지려 애쓰든지 둘 중의 하나밖에 없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자 멀게만 느껴졌던 남미의 문화가 나의 혼에 바짝 다가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미, 열정의 라세티』(류수한 지음, 살림 펴냄),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는 법』(정준수 지음, 플럼북스 펴냄), 『멕시코 여행』(신현주·윤진성 지음, 나무도시 펴냄), 『잉카 in 안데스』(우석균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 등 올해 나온 책들도 풍성하다.

내년 수교 50주년을 맞아 외교통상부 중남미과 등에서 지원하는 문화 행사도 여럿 준비되고 있다.
올해 열리는 행사들도 있다. 이번 달만 해도 3일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마지막 보컬리스트인 오마라 포르투온도가 내한 공연을 했고 덕수궁 미술관에서는 11월 9일까지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이 열리고 있다. 10월 24일부터는 안산 문화예술의전당에서 ‘라틴아메리카 연극제’가 열리며 다음달 6일에는 음악 다큐 영화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카페’가 개봉한다.

사진 안산문화예술의전당(ansanart.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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