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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어린이책] 멈춰, 절벽 앞에서 멈춰 난 내일 다시 태어날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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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스프링벅
배유안 지음, 창비, 220쪽, 8500원, 청소년

 부모들에게는 1989년 개봉했던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떠올리게 할 법한 청소년 소설이다. 역시 자살과 가출을 다뤘지만 연극과 시로 희망을 꿈꾸고, 학교의 문제를 당당하게 까발리는 21세기 아이들이 등장한다는 점이 다르다.

주인공 동준이는 공부도 중간이고,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열여덟 고교생이다. 수재로 유명한 형과 비교 당하는 게 피곤한 점만 빼면 그렇다. 부모님 몰래 학교 연극부에서 축제 때 공연할 연극 준비를 하던 동준이는 갑자기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일류대에 진학했고 사람들의 칭찬만 받던 형은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형이 왜 자살했을까 이해 못 하던 동준이는 형을 가르쳤던 과외선생님이 형의 수능시험을 대신 치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의 강요에 대리 시험으로 대학에 갔던 형이 죄책감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한 것이다.

동준이의 친구 창제도 또다른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연극부 활동을 반대하고, 모든 일에 간섭하는 엄마를 견디다 못해 창제는 가출한다. 창제는 사회복지시설에서 각종 청소와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다섯 주를 머물다 돌아와 말한다. “네 인생을 네가 주도하라. 네 인생의 열매는 네가 맺은 것이라야 그 맛이 황홀하다.”

소설 곳곳에서 아이들은 부실한 학교 급식, 부당한 체벌 문제를 제기한다. “허연 기름이 군데군데 굳어 있는 돼지고기 볶음, 맹물에 배춧잎 몇 개 띄운 시래깃국, 말라붙은 닭튀김”은 엄연한 현실인 급식회사와 학교간 부당한 계약 문제를 드러낸다. 수업 시간에 ‘초등학생에게 영어로 수학을 가르치면 영어 실력이 늘까?’, ‘거대 자본의 할리우드 영화 이야기’를 열내며 이야기하느라 수업은 소홀한 교사도 오늘날 이념화된 교육 현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교사는 “수업 좀 합시다”라고 말하는 학생의 뺨을 열세 대나 때린다.

이같은 소설의 리얼리티는 중고교에서 국어를 가르친 글쓴이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글쓴이는 ‘작가의 말’에서 “몇 년간 모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한 이야기 속에 넣었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발견한 아이들의 본모습은 건강함이었다. 그들이 겪어내야 할 일들이 만만찮지만, 여기저기 부딪치고, 상처받고, 반항하고, 방황도 하지만, 그렇다고 건강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아프리카 남부 지방에 사는 양을 뜻하는 제목과도 연결된다. 백과사전에는 “몸길이 120∼150㎝, 어깨높이 70∼90㎝로 스프링영양이라고도 한다. 경계하거나 도망할 때는 네 다리를 붙였다 늘려서 등을 둥글게 하고 머리를 낮게 한 채 반복해 뛴다”고 돼 있다. 이 양들은 풀을 먹으려고 무리를 지어 초원을 달린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풀을 먹으려던 원래 목적은 잊어버린 채 앞서 있는 양을 추월하기 위해 무작정 달리다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은 바로 절벽 앞에서 멈추지 못하고 떨어지는 스프링벅과는 달리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찾아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문자 메시지를 통해 “오늘 죽고 내일 다시 태어나기”를 외친다.

형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가는 과정은 속도감 있게 읽힌다. 소설 속 연극은 어두울 수 있는 이야기에 탄력을 주고, 주인공이 친구의 조언 등으로 성장해가는 모습도 흐뭇하다. 하지만 가출을 미화했다거나,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 선생 같은 너무 ‘전형적인’ 교사가 등장한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에게는 권해도 좋겠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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