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의 모든 것 7년 걸려 30권에 집대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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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전모를 밝혀주는 대규모 사료집이 출간됐다.최근 역사문제연구소(소장 이이화)가 7년간의 작업끝에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30권을 펴냈다(史芸연구소 刊).기존의 발굴 자료는 물론 새로 찾아낸 중요 사료를 망라■ 고 있는 이총서의 출간으로 관련 연구의 튼튼한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이 총서는 역사문제연구소가 동학농민운동 1백주년 기념사업으로추진,원래 1백년이 되는 1994년 출간예정이었으나 당시 6권밖에 발행하지 못했다.
총서의 출판을 맡은 여강출판사가 사정상 문을 닫게 되자 이 소식을 들은 서지학자 이종학(李鍾學)씨가 선뜻 지원과 출판을 맡아 자신이 운영하는 사운(史芸)연구소에서 출간하게 된 것.총서의 26~30권까지 5권은 李씨 소장의 문헌과 사진자료를 자료편으로 싣기도 했다.
이 총서는 동학농민운동의 전체상황(1~6권),2차농민전쟁의 전개와 지역사료(7~12권),정부기록(13~18권),일본기록(19~25권)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 근대사의 일대 사건인 동학농민운동은 남.북한 학계는 물론 일본학계에서도 중요한 연구주제의 하나로 다루고 있어 관계 논문만도 수백편에 이르나 여태껏 기초자료가 제대로 수집.정리되지 못해왔다.
특히 눈길을 끄는 새로운 발굴자료로는 1893년 보은집회에서의 요구조건과 각 지역 지도자와 동학군.정부군의 동정과 명단등다수를 포함하고 있다.
척사파 유림계열 김영식(金永植.1849~1924)이 1894년 평안도 일대에서 벌어진 동학농민운동의 실상과 청일전쟁 당시의 과정을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는 『사정일기(沙亭日記)』가 그 대표적인 예.이 문헌에 함께 수록된 그의 동생 영상(永相)의 『율산일기(栗山日記)』 끝에는 1893년 보은집회의 요구사항이 적시돼 있어 농민운동의 성격을 밝히는데 결정적 자료로 평가된다.
이 문헌에 의하면 당시 동학의 요구사항은 「척왜양사(斥倭洋事.왜와 서양 배척)」「민씨축출사(閔氏逐出事.민씨세도정치 축출)」「호포혁파사(戶布革罷事.가구당 할당된 군역세 혁파)」「당오혁파사(當五革罷事.남발한 악성화폐 폐지)」「각읍세미 정지사(各邑稅未精持事.읍별로 세금을 배당하는 제도 개혁)」「착목면불통외국물색사(着木綿不通外國物色事.외래 사치품 수입금지와 생필품 장려)」로 적고 있어 그동안 보은집회가 「교조신원(敎祖伸寃)」「척양척왜(斥洋斥倭)」만을 요구했던 것으로 보았던 관점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대교(大橋)김씨 가문의 1894년 당시 9개월간 피란기록인 『피란록(避亂錄)』엔 충청도 서부지역 동학지도자 이름과 동학군동정이 기록돼 있어 이 지역 동학활동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또 전라도 고부 농민군 토벌을 벌 인 수성군(守城軍) 명단이 적힌 『취의록(聚義錄)』이나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다가 백범 김구와 함께 거병을 위해 만주일대로 진출한 김형진(金亨鎭)의 기록 『노정략기(路程略記)』도 주요 발굴의 하나.
해외자료로는 일본외무성 외교사료관 소장자료인 『한국동학당봉기일건(韓國東學黨蜂起一件)』이 눈에 띈다.주한 일본관리들이 본국에 보고한 비공식 문건인 이 자료는 1894년 10월부터 약1년간 동학군 활동을 일본 입장에서 적고 있다.여기 에는 특히 전봉준(全琫準)등 동학군 지도자에 대한 재판기록이 1천3백여점존재한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으나 관련문헌의 실존여부는 확인되지않고 있다.
역사문제연구소는 25일 오후2시 대우재단 3층 대회의실에서 이번에 발간된 총서에 실린 자료를 평가하는 사료비평회를 갖는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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