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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타는 장치'가 아니라 몸에 '다는 장치'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자전거를 지속적으로 즐기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 불편함이나 통증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으레 자전거를 타는 자세를 교정하는 데서 해답을 찾으려 한다. 물론 올바른 자세로 자전거를 타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무작정 자전거에 몸을 맞추는 게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병을 키우게 될 수도 있다.
“걷기나 달리기를 하기 전에 발에 맞는 신발을 골라 신듯, 자전거도 몸에 맞는 것을 타야 한다.” 이것은 자전거 피팅 전문가라는 이색적인 직업의 이동건(38) 씨의 말이다. 이 씨에게서 자전거를 내 몸에 맞추기 위한 몇 가지 조언을 들어 보았다.


Walkholic(이하 ‘WH’) ‘자전거 피팅’이라는 말이 매우 생소하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이 : 자전거를 ‘신체에 다는 장치’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다. 하다못해 양말조차도 발해 비해 크거나 작으면 운동할 때 불편하다. 그런데 10kg이 넘는 장치가 몸에 맞지 않는다면 어떻겠는가.
간단히 말해, 자전거 피팅이란 자전거를 각자의 신체조건에 맞게 재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자전거를 사는 것부터 피팅이라고 봐야 한다. 자전거의 엔진은 바로 라이더 자신이다. 따라서 라이더의 골격, 근력, 체중, 유연성, 병력 등을 고려해 자전거를 몸에 맞게 만들어줘야 한다. 특히 생활자전거와 달리 전문자전거는 사이즈별로 있다. 자전거 뼈대라고 말하는 프레임 사이즈를 일반적으로 사이즈라고 말한다. 키와 팔다리의 비율에 따라 가장 알맞은 사이즈를 고르는 것을 사이징이라고 한다. 그리고 근사치의 사이즈를 개인의 특성에 맞게 조정하는 것을 피팅이라고 한다. 사이징과 달리 피팅은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 그리고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WH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나?
이 : 1996년에 처음 자전거를 운동으로 접하게 됐다. 그런데 자전거를 한 시간 이상 일정한 운동 강도 이상으로 타다보면 누구나 허리나 다리 등에 불편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게 심해지면 극심한 통증이 되기도 한다. 당시에는 자전거를 스포츠로 인식하는 매니어들이 많지 않았고,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문제가 생겼으니 이걸 해야 하는데 뾰족한 수가 없어서 대형서점 외국서적 코너를 찾았다. 국내에서 못 구하는 책들은 해외에서 직접 들여와서 읽었다. 기본적인 매뉴얼과 원리부터 차근차근 익혀야 했다. 공부를 하다보니, 자전거의 구조와 신체 구조를 둘 다 알아야 하겠더라. 독학 끝에 내린 결론이 자전거는 ‘타는 장치’가 아니라 ‘다는 장치’라는 것이었다.
내가 전문적으로 자전거 피팅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무도 자전거를 탈 때 생기는 현실적인 문제에 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원래 그래”라는 식으로 필요성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렇다면 내가 시작을 해야 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게 해답을 준 책의 저자들을 찾아 일단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들을 스승이자 파트너로 삼아 피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사실 자전거는 모르면 모르는 채로 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경험적으로 체득한 것은 자전거가 신체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획일화된 공산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전거는 사람을 닮아야 하고, 사람은 누구나 다르다는 생각이 이 자전거 피팅에 매진하게 만든 힘이다.


WH ‘자전거를 사는 것’부터 피팅의 시작이라 했는데, 피팅은 어떤 단계로 이뤄지는가?
이 : 용도에 맞는 자전거 종류를 결정하고, 사이즈를 선택하고, 체력조건에 맞는 세팅을 하는 세 가지 단계로 이뤄진다. 자전거에는 종류가 많습니다. 근거리 이동을 위한 생활자전거부터 여행용 자전거, 접이식 미니벨로, 산악용 자전거, 하이브리드용 자전거 등이 있고, 이 안에서도 또 세분화되죠. 그러니까 아주 원론적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용도에 맞는 자전거를 선택하는 순간 피팅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누구도 설거지를 할 때 털장갑을 끼지 않는다. 그런데 자전거는 용도에 맞지 않게 선택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자전거를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예산에 맞춰 용도를 변경해서 사용하는 거다. 원하는 용도가 있다면 피팅은 수월해진다. 용도를 결정한 다음에는 사이즈를 선택해야 한다. 생활자전거나 미니벨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자전거는 여러 사이즈가 있다. 옷을 입을 때처럼 신체조건에 맞게 크기를 선택해야 한다. 그 다음은 체력에 맞게 자전거를 세팅해야 한다. 똑 같은 키의 두 사람이라도 유연성이나 근력이 다르면 세팅이 완전히 달라진다. 체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나 복부비만이 심한 사람들에게 랜스 암스트롱 선수가 타는 자전거처럼 세팅을 할 수는 없다.

WH 자전거 피팅에 대한 국내 인식은 아직도 열악할 것 같다.
이 : 관련성이 비교적 높은 전문자전거 수요층에서만 피팅이 이뤄지는 형편이다. 하지만 자전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일정 시점을 지나면 피팅 수요도 증폭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가 직접 피팅을 해주는 사람들이 연간 200명 정도 된다. 하지만 자전거에 사이즈가 있는지조차 모르던 사람들이 최근 들어 사이징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팅 수요 자체는 자전거 인구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지만, 사이징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이게 곧 피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2006년도를 기점으로 피팅 수요가 급상승세를 탔다. 자전거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지금 추세로 보아선 우리나라도 2009년도를 기점으로 증폭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자전거 생활에서 피팅은 피할 수가 없다.

국가대표팀의 이민혜 선수 피팅 모습


WH 주로 어떤 사람들이 찾는지?
이 : 자출족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또 주한 외국인들, 실업팀과 국가대표팀 선수들, 그리고 동호회 회원인들이 많이 찾는다.
자출족 중에서 피팅 수요가 많은 것은 주로 통증 때문이다. 매일 통증을 참으면서 출퇴근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초적인 자세가 잘못돼서 통증이 생길 수도 있지만, 라이더의 양쪽 다리 길이가 약간씩 다르다거나 자전거의 기본 세팅이 잘못돼서 생기는 통증도 곧잘 있다.
사이클리스트인 주한 외국인이 찾아 온 적이 있었는데, 피팅을 받고 나서 국내 시합에서 자기 기록을 갱신했다. 그 뒤로는 그가 이끄는 클럽의 신입 회원들은 모두 내게서 피팅을 받게 됐다. 이번 북경 올림픽에 출전한 3명의 선수 모두 내가 속해 있는 피팅 업체인 산즐러에서 피팅을 받았는데, 아쉽게도 성적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가 가능성은 확인했다고 생각한다.


WH 집에서도 직접 할 수 있는 간단한 피팅 방법이 있다면?
이 : 안장의 높이와 앞뒤 위치를 올바르게 잡아 주거나 핸들바의 위치를 제대로 맞춰주는 사이징 수준의 피팅은 집에서도 할 수 있다. 자전거 안장에 앉아 페달을 돌려 제일 아래 지점에 페달이 위치할 때 무릎이 완전히 펴지지 않고, 25-35도 정도 굽혀지는 위치로 안장높이를 설정해야 한다. 허리는 페달링 시 복부에 부담이 가지 않을 정도로 숙일 수 있게 세팅하되, 팔을 자연스럽게 15도 정도 굽힐 수 있는 높이라야 한다.

최경애 워크홀릭 담당기자 doongjee@joongang.co.kr

200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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