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다간 장기 불황 늪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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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에서 정보통신 단말기 부품을 만드는 A기업은 최근 투자 계획을 중단했다. 이 회사의 權모 사장은 "회사의 장래를 위해선 투자가 불가피하지만 요즘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어느 것 하나 불안하지 않은 게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고유가.원자재난에 중국 쇼크까지 '사방이 악재 투성이'인데 정부.정치권.노동계.시민단체 등 누구 하나 기업의 입장을 이해해 주는 곳이 없다는 얘기다.

경기도 안산의 C산업 李모 사장은 "주변의 중소기업 사장들 가운데 어떻게 하면 사업을 빨리 정리하고 해외로 떠날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외국계 생명보험사 대표인 B씨(56)는 "한국이 자멸할 것 같아 걱정"이라며 "한국은 기업가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쪽으로 환경을 조성해가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경제가 불안하다. 이대로 가다간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5%대의 성장이 무난하다며 2분기 중에는 회복이 시작될 것이라고 공언하지만 체감경기는 아직도 꽁꽁 얼어붙었다. 그나마 이익을 내는 기업들도 투자할 생각을 하지 않고, 국제 유가 상승과 환율 상승으로 물가마저 불안하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를 둘러싼 안팎의 악재를 방치하면 자칫 '저성장-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본지가 국내 경기의 진단을 의뢰한 경제전문가 20인은 한결같이 "현재의 양극화 현상이 장기화할 경우 구조적인 불황의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이 좋다고 주장하다가 외환위기를 맞았던 경험을 새겨 지금부터라도 기업 투자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두 가지 숫자로 나타난 경기지표만을 보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는 수출 독주의 '외바퀴 경제'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은행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중국 쇼크'를 전후로 주요 15개국의 환율 상승폭과 주가 하락폭을 비교한 결과, 한국이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기업들의 투자 기피로 실종된 '경제 성장의 확산 고리'를 살려내고, 경제의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을 시급히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 완화와 시장친화적인 정책이 필수적이란 주문도 나왔다.

경제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대내외 여건이 어려운 판에 더 이상 보수-진보, 성장-분배의 이분법적 이념 논쟁에 매달릴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경제부.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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