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68년과 96년의 한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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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역사의 시계가 한반도에서는 멈췄는가.지난 68년 벌어졌던 냉전시대적 대결이 무려 28년의 긴 세월이 흐른 96년 세계적 탈냉전시대에 되풀이되고 있으니 말이다.
68년의 화면으로 돌아가 보자.북한은 무장공비의 청와대기습사건과 미함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을 일으킴으로써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급격히 고조시겼다.한국에서는 광범위한 소탕전이 벌어지는가운데 강력응징론이 우세해졌다.실제로 원산 일대 에 대한 보복작전이 검토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전개에 주변 열강은 모두 당황했다.소련과 중공도 한반도에서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이미 세계적 차원에서의 긴장완화와 화해를 구상하던 미국으로서는 더더욱 남북한 사이의 무력충돌을 반대하고 있었 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존슨 대통령은 때때로 국제분쟁의 조정자역할을 맡았던 밴스 변호사를 자신의 특사로 임명해 한국으로 보냈다.뒷날 국무장관이 된 밴스의 회고록을 그대로 인용하면 『한국이 북한을침공하지 못하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는 것 이 1차적사명이었다.
미국의 의지는 관철됐다.한국은 보복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그 대신 미국으로부터 군사원조의 증가를 약속받았다.2개월뒤 한.미정상회담이 열렸고 전통적 우호와 유대가 다시 확인됐다.
96년의 화면도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까.공비출현,대규모 소탕전,보복응징론의 우세는 그대로 닮았다.푸에블로호를 납치했던 북한이 이번에는 선교사를 납치한 것도 규모에서는 차이가 나나 본질적으로 비슷하다.문제가 풀려가는 그림도 비슷하다 .국무부 차관보가 달려와 설득을 시도했으며 한.미 정상회담 개최가 발표됐다.등장인물의 배역과 무대장치의 소도구는 분명히 달라졌다.그러나 『영화 한반도』의 스토리는 28년의 시차를 무시한채 여전하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68년 이후 한반도에서 어떤 일들이일어났던가를 돌이켜보게 만든다.그것은 96년 이후 한반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측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68년의 군사적 긴장을 겪으면서 미국은 한국에 대해 남북대화를 강력히 권고하게 됐다.
미국의 의지는 확고했다.특히 69년 닉슨 행정부가 출범하면서소련과 중공을 상대로 긴장완화를 본격적으로 추구하게 되자 강대국들의 주변에 있는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는 당연한 과제로 제기됐다.그리하여 71년 남북대화가 시작됐고,72년 남북공동성명이발표되기에 이르렀다.
68년의 그 긴장됐던 상황에서 누가 71~72년의 대화국면을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그러나 긴장이 고조되면 그것은 반드시 한번쯤 해소되고만다는 평범한 공리(公理)를 우리는 재음미할수 있게 됐다.
오늘날의 상황도 마찬가지다.세계는 화해와 협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냉전 분위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지역이라는 이 동아시아에서도 천하의 대세는 탈이념적 화해와 협력이다.이 물결은 21세기가 가까워질수록,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설수 록 더욱 거세질 것이다.
한반도라고 해서 결코 예외일 수는 없다.「냉전의 마지막 외로운 섬」인 한반도의 빙산들을 녹이려는 노력은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계속 기울여질 것이다.특히 폐쇄체제인 북한을 세계 자본주의체제 속으로 끌어내려는 미국의 노력은 내년 새 임기를 시작하게 될 클린턴 행정부에 의해 본격적으로 기울여질 것이다.
이것은 결국 한국의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정책 또는 봉쇄정책이갈림길에 서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여기에 한국의 대북(對北)정책과 외교정책의 고뇌가 있다.세계적 조류에 동승하고 주변 열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마땅하지만 북한의 모험주 의를 어떻게 억제시키고 우리 국민의 분노를 어떻게 가라앉힐 것이냐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렇기에 정치인들의 경륜이 더욱 소중하게 요청된다.
김학준 단국대 이사장.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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