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업계 겹고통 “잔금이 안 들어온다” 보이지 않는 미분양도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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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중견 건설업체인 A사의 임원은 올해 입주에 들어간 단지들을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2~3년 전 분양 당시엔 청약자가 몰려 모든 가구를 계약했지만, 막상 입주가 닥치면서 계약자로부터 잔금을 못 받는 일이 잦아지고 있어서다. A사가 올해 입주시킨 2개 단지에서 연체된 잔금만 210억원이다. 그는 “올해 입주하는 단지에서 들어오는 잔금을 미분양 단지의 공사비로 쓰려고 했는데, 잔금을 못 받으니 돈을 어디에서 구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미분양 홍역을 앓고 있는 주택 건설업계에 분양가 잔금 연체 몸살까지 겹쳤다. 통상 분양가의 20~30%인 잔금을 내지 못하는 계약자가 크게 늘고 있다. 업계에선 이를 ‘보이지 않는 미분양’으로 부르고 있다.

◆잔금 연체 늘어=올 6월 입주한 서울 은평뉴타운 1지구 1636가구 가운데 9가구 중 하나꼴인 188가구가 아직 잔금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연체금액은 총 450억원. 시행사인 SH공사 관계자는 “입주를 시작하고 통상 2~3개월이 지나면 대부분의 계약자가 잔금을 내고 열쇠를 받아가게 마련인데, 시간이 지나도 연체율이 별로 줄어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8월 말에 잔금 납부기간이 끝난 수도권 B아파트의 경우 전체 가구의 7%에서 연체된 잔금이 70여억원이다.

지방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7월 입주를 시작한 경북 C아파트에선 잔금 연체 가구가 전체의 30%에 달한다. 연체된 잔금은 약 250억원. 회사 관계자는 “연체 금액으로 치면 전체 가구의 15%가량이 미분양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충북 D아파트도 잔금 납부기간이 끝난 지 3개월이 지나도록 전체 가구의 20%가량인 130가구가 잔금을 내지 않아 140억원이 연체되고 있다. 게다가 이 단지의 10%는 미분양 상태다.

대한주택건설협회 정종균 부회장은 “예전에는 입주 가구의 약 5%가 잔금 일부를 한두 달 연체하는 정도였으나 올 들어선 잔금 전액을 연체하는 가구가 20~30%에 달한다”고 말했다.

◆자금난 심화=입주 예정자들이 기존 집을 팔아 잔금을 마련하고 싶어도 집이 팔리지 않고 있다. 곳곳에 입주가 잇따르면서 전세 물량이 쏟아져 기존 전셋집을 빼기도 쉽지 않다. 입주 예정자 이모(54·부산)씨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4개월째 팔리지 않아 연 20%에 가까운 고리의 연체료와 관리비까지 물게 돼 답답하다”고 말했다.

잔금 연체율이 워낙 높아 잔금 납부기간을 연장해 달라는 입주 예정자들의 민원도 잇따르고 있다. SK건설 관계자는 “잔금 연체가 3개월 이상 되면 업체 측에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며 “하지만 해지하면 미분양으로 남을 게 뻔해 그러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중견 업체인 C사 관계자는 “분양이 안 돼 신규 분양단지에선 돈이 안 들어오고, 프로젝트 파이낸싱(PF)도 막힌 상태에서 입주 단지 잔금으로 부족한 자금을 채우려던 계획이 틀어졌다”고 말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주택경기가 좋아질 기미가 없어 잔금 연체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건설업계 자금난에 기름을 붓는 꼴”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중견업체 S사는 수십 가구의 미분양보다 수백 가구의 잔금 연체 때문에 부도가 나기도 했다.

한국주택협회 윤오수 부회장은 “주택시장의 매매가 쉽게 살아나기 어렵기 때문에 잔금에 대한 대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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