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미술의 힘 ④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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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 기자

‘거대한 서사’ 끌어안은 이불

 16㎡(약 5평) 남짓한 방안에서 거대 서사를 구상하다-.


설치미술가 이불의 작업실은 그랬다.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 개인전, 98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휴고보스 미술상 최종 후보작가 전시, 99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 수상 등으로 세계를 누비는 대형 작가지만, 그의 본거지는 뉴욕도 런던도 아닌 서울 성북동 산자락이다.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도사린 채 그는 과거와 미래, 지구와 우주를 넘나든다. “상상의 크기로 치자면 걸어다니기만 하던 고대 작은 마을 주민도 우주를 구상하지 않았나”라며.

96년 이불은 신문 배달도 잘 안 되는 이곳 산등성이 철문 안에 들어앉았다. 진돗개 세 마리가 짖어대는 작은 2층 집과 거기 붙은 컨테이너 박스. 여기서 반짝이를 단 채 썩어가는 생선 ‘화엄’(1993), 로봇과 인체가 합쳐진 채 매달린 ‘사이보그’(97), 촉수가 뻗어나오는 ‘애너그램’(98), 반들거리는 전시장 벽·바닥·천장에 실리콘 구(球)가 끝없이 비춰지는 ‘광년’(2008)이 태어났다. 머리를 쓰는 작업은 집 1층에서, 몸을 쓰는 작업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한다. 좀 더 스케일이 큰 작품을 하려면 도심의 또 다른 작업장이나 경기 북부의 작업장으로 향한다. 5명의 조수가 늘 그를 돕는다.

거울 속에 건축형상이 무한히 반복된다고 해 ‘인피니티(infinity)’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무제’(120×80×13㎝). [PKM트리니티갤러리 제공]

집의 중추는 1층 서재다. 16㎡ 남짓한 작은 방의 도배를 대신한 것은 벽면 가득한 작품 스케치들이다. 기자를 맞은 이불은 위아래가 한 벌인 작업복 차림이었다. 외출할 때와 잠잘 때 빼고는 항상 이 옷이다. 그만큼 작업과 생활, 일과 휴식의 구분이 없다.

“난 취미랄 게 없다. 2층에 자러 올라갔다가도 메모할 게 생기면 이 방으로 내려오고, 아침에 눈뜨면 제일 먼저 오는 곳도 여기다. 전시 때문에 해외에 나갈 때를 빼고는 죽 여기 있는다. 1년의 절반쯤?”

‘노력가’라 할 수 있는 그에게 후배들은 ‘전략’을 묻는다. 답변은 “운이 좋을 것”, 그리고 “운 좋을 때까지 몇 십 년이고 할 것”이다.

프랑스의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자 리오타르는 우리 시대를 “더 이상 서사가 불가능한 시대”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이불은 ‘나의 거대한 서사(Mon Grand R<00E9>cit)’라는 화두를 끌어안고 산다.

“내가 사는 세계, 나와 같이 사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관심사를 파고들다 보면 권력의 구조, 유토피아 사상, 실패한 이상, 빛바랜 꿈, 한국 근대사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16일부터 다음달 20일까지 서울 청담동 PKM트리니티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신작 ‘인피니티(infinity)’ 시리즈도 그렇다. 지구의 저 밑바닥에서부터 파낸 고대 건축물, 혹은 미래의 마천루 같은 회색의 건물들이 액자에 들어가 있다. 이 형체는 액자 안의 양면 거울에 비춰지며 끝없이 반복된다.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내는 풍경, 거울로 반사되는 무한 반복에 의한 풍경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질주 중이다. 전시 오픈 직후 그는 뉴욕으로 날아간다. 올 2월 홍콩에서 시작한 샤넬 ‘모바일 아트 프로젝트’의 뉴욕 순회전을 위해서다. 이어 이달 말에는 미국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 비엔날레인 ‘프로젝트1 뉴올리언즈’에 참가한다. 숨고르기는 내년 말이다. 베를린에서 시작해 유럽과 미국, 아시아를 도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20여 년간 싸워온 작품활동의 반환점을 돈다. 그리고 틈틈이 성북동 산자락에 틀어박혀 ‘나의 거대한 서사’를 붙든다.

30대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

 “사람 사는 얘기가 지루하면 인생 자체가 지루하지 않겠나.”

“나를 가장 움직이게 만드는 분야이니까.” 왜 미술을 하느냐는 질문에 이불(사진左)은 한동안 침묵한 뒤 천천히 말했다. 정연두는 작업실 한가운데 설치한 대형 모니터로 신작 ‘수공기억’을 보여줬다. [강정현 기자, 양영석 인턴기자]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는 남의 말을 잘 듣는다. 지난 5월부터 석 달간 탑골공원, 서울노인복지회관서 살다시피 했다. 40여 명의 할아버지·할머니를 인터뷰했다. 그 녹화 화면을 백 번도 넘게 봤다. 인터뷰는 이런 식이다. 남편의 바람기와 주사로 점철된 고생담을 풀어 내던 할머니는 문득 밝은 낯빛을 하곤, 요즘 사귀고 있는 84세 할아버지가 인물이 훤하다고 자랑한다. 제주도에 함께 가서 낙타를 타고 싶다는 이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정씨는 남양주 촬영소 세트장에 한라산 사진을 대형 출력해 붙이고, 10t 트럭으로 모래를 깔고, 포클레인으로 삽질해 사막을 만들고, 낙타를 끌어왔다. 이로써 현실의 고단함은 아름다운 동화가 된다. 두 개의 모니터 중 왼쪽에는 노인들의 회한과 허세, 푸념 섞인 인터뷰가, 오른쪽에는 이를 시각화한 정연두 특유의 수작업 화면이 펼쳐진다. ‘수공기억(Handmade Memories)’이라는 제목이 뜻하듯 “비효율적이고도 무모하게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낸 화면”들이다.

“소설 『해리 포터』를 참 좋아했는데, 주인공이 빗자루 타고 날아다니는 장면을 정신없이 줌인 줌아웃 하는 영화는 보고나니 남는 게 없었다. 차라리 솜구름이 선풍기 바람에 날아다니는 MBC 인형극이 낫다 싶었다”는 그는 ‘로(low) 테크놀로지’를 좋아한다. “바보스러울지도 모르지만 난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다. 나 역시 첨단 기기를 쓰지만 보는 이에게는 그게 인간적인 기술로 보였으면 한다.”

17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정연두 개인전은 노인들의 기억에 대한 얘기다. 인터뷰한 노인 6명의 이야기를 현실에 구현했다. 꿈과 기억은 그가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식이다. 이 막연한 마음속 풍경을 그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바꾼다. 이번 신작 ‘수공기억’은 평범한 이들이 자기가 꿈꾸는 모습으로 분장하고 사진 찍은 ‘내 사랑 지니’(2001) 프로젝트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그때 주유소 아르바이트 소년은 포뮬러 원 자동차 경주 레이서 차림으로 사진을 찍었고, 아이스크림집 아르바이트 소녀는 남극을 탐험하는 에스키모 여전사로 변신했다.

6편의 인터뷰 시리즈로 구성된 ‘수공기억’ 중 ‘제주도 낙타’편. [국제갤러리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해 정연두를 ‘올해의 작가’에 선정했다. 30대 작가로는 처음이었다. 이때 전시한 85분짜리 영상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는 올 3월 뉴욕 현대미술관(MoMA)서 여러 차례 상영돼 호평을 얻은 뒤 6월 소장됐다. 그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국제갤러리에서는 “한국 작가의 미디어 아트 작품이 MoMA에 소장된 건 백남준 이후 처음”이라고 흥분했다.

“미술 하면 굶어 죽는다”고 뜯어말린 약사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대 조소과에 진학했던 경남 진주 태생의 정연두는 나이 마흔도 되기 전에 국제적으로 날갯짓하고 있다. 성공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그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 얘기를 꺼냈다. “검프가 무작정 미 대륙을 달릴 때 많은 이가 뭔가 철학이 있을 거라 여겨 따라 뛰었다. 미술가는 그런 것 같다. 나는 지금이나 나중이나 동일한 에너지를 가지고 계속 작품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검프가 달리듯.”

사진=강정현 기자, 양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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